바둑 관계자들 "백담사는 사상 최고의 시설"

결전의 날 새벽, 대국장인 백담사 산정에 5㎝가량 눈이 내렸다. 바둑 관계자들이 전날 밤을 묵은 만해마을에서 대국장까지 가려면 7㎞ 산길 코스를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사찰측은 이런 상황에 미리 대비해 사륜구동차 3대, 체인을 감은 승용차 3대 등 6대를 즉각 동원해 일행 29명을 완벽히 실어 날랐다. 그런 뒤 산길에 모래를 깔았다. 최악의 경우 쓸 예정이었던 트랙터까지는 운행하지 않았다.

세계 바둑 사상 최초의 국제결승전 대국을 위한 백담사측 준비는 한달 전부터 시작됐다. 인터넷과 전화선을 끌어오고 신선한 식자재를 미리 주문했다. 두곳의 식당에는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전담 보살'들까지 배치됐다. 바둑 관계자들 모두가 감동한 표정이었다.

취재진은 대국장인 선방(禪房) 무설전(無說殿)이 세계 바둑 결승전 사상 최고의 시설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노고를 치하하자 사찰 관계자들은 "조계종 3교구 회주(會主) 무산(霧山) 스님의 특별 지시가 있었다"며 합장했다. 곡절을 겪고서도 대국은 예정시간보다 오히려 2분 일찍 시작됐다. "이세돌·구리가 제 아무리 신출귀몰해도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군." 누군가 던진 농담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풍경 소리와 독경 소리, 바둑돌 착점 소리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절묘한 하모니를 연출했다. 유서 깊은 산사(山寺)로 향하는 계곡엔 눈이 시리도록 맑은 물이 쏟아졌고, 서설(瑞雪)을 뒤집어쓴 소나무들이 크리스마스카드에서나 보던 절경을 연출했다. 22일 아침 한국기원을 출발할 때 "왜 굳이 먼 곳에 가서 대국하느냐"던 60대의 중국기원 관계자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