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힐듯 잡히지 않는 사랑에 대해

설치미술가 배정완(35)씨의 《겨울은 기억에 빛을 입힌다》 전시장은 빛이 차단된 130㎡의 무대였다. 투명 플라스틱 줄이 3m 가까운 철 구조물에 촘촘하게 연결돼 거대한 하프를 연상시켰다. 투명 줄은 프리즘처럼 조명을 분사하면서 관람객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음악과 함께 앙상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투명한 줄은 존재가 있을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요. 사랑의 완전할 것 같으면서도 완전하지 않은 면도 보여주고요." 현(絃) 안에 들어가 있다 보면 아련한 기억, 몽환적인 잔상에 빨려든다.

배씨는 작년 여름부터 조명과 음악, 음향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여의도의 한 빌딩 지하에서 연습해왔다. 테마로 정한 15분이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배정완씨는 미국 MIT 공대를 나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건축가이다. 그는 대학원 시절 컴퓨터를 이용해 영상물을 만들면서 설치미술에 눈을 떴다. 2004년 첫 그룹전을 가진 데 이어 2007년에는 성곡미술관이 선정한 '내일의 작가'로 뽑혔고, 작년에는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배씨는 "건축과 설치미술의 성격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배씨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된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아들이다. 전시장을 나오는데 배씨의 어머니인 서양화가 신수희씨와 마주쳤다. 신씨는 "첫 전시 때는 아들이 뭘 했는지 몰라 전시에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마음에 든다는 말이었다. 전시는 토포하우스에서 3월 2일까지 열린다. (02)734-7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