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고 싸우고, 가족이란 그런 것

가족에게는 정말 하기 힘든 말이 두 가지가 있다. ‘사랑해요’와 ‘미안해요’다. 길을 지나가다 처음 보는 사람과 살짝 어깨가 스쳐도 ‘미안합니다’라고는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의 가장 아픈 상처를 마구 헤집어도 끝내 ‘미안해’ 한 마디를 못하는 것이다.

약물 중독자였던 ‘킴(앤 해서웨이)’이 16살이었을 때 동생 ‘이든’과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벌어진 사고로 이든은 세상을 떠났고, 지금 킴은 그 죄책감으로 재활원을 들락거리는 신세다. 그런 ‘킴’이 언니 ‘레이첼(로즈마리 드윗)’의 결혼식 때문에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킴은 가족들과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고, 급기야 결혼식 전날 사고를 치고 만다. 킴과 가족들 사이에 벌어졌던 이 소동의 원인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다른 엉뚱한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 탓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랑’과 ‘미움’은 정비례하지 않던가. 가족들이란 서로가 사랑하는 만큼 섭섭함도 크고, 원망도 커지는 법일 테다.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는 한때 큰 시련을 겪은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미묘하게 오가는, 반가움과 서운함을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아냈다.

흔히 다큐멘터리의 사실감이나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한 ‘핸드헬드’ 촬영 기법은 이 영화에선 그 이상의 의미로서 쓰인다. 겉으로는 유쾌하고 순조롭기만 한 레이첼의 결혼식 일정 내내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는 카메라는 사실, 가족들이 서로를 살피는 눈이다. 이렇게 많은 손님들 앞에서 행여 실수나 하지 않을까,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입진 않았을까, 이 분위기를 충분히 즐기고 있을까……. 아직 버리지 못한 이든의 작은 접시 하나에 침울해지는 가족들이니, 이토록 깊은 상처를 갖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불안하게 서로를 훑던 미묘한 감정은 레이첼의 결혼식 전날, 비로소 폭발한다. 가족들은 손찌검이 오갈 만큼 크게 싸웠지만 레이첼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아주 성대하게 치러진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에 묻고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은근한 용서를 눈짓으로 구하고, 또 이에 말없는 눈물로 화답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 담긴 모든 시선들은 실제로 우리가 그간 가족들을 바라보던 시선과 놀랄 정도로 닮아 있다. 따라서 낯간지럽게 사과의 말을 건네지 않아도 이들 가족들은 이미 서로를 용서했음을 관객들은 가슴으로 다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미묘한 감정싸움이 여기서 끝은 아니다. 어쩌면 이들 가족은 똑 같은 말과 똑 같은 울음으로 영원히 싸움과 화해를 반복할 것이다. 가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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