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큰 곳·급한 곳

〈제7보〉(86~100)=바둑의 수(手)는 '큰 곳' 또는 '급한 곳'을 찾아 착지한다. 흑 ?Y는 '급한 곳' 계열에 드는 수. 참고도를 보자. 전형적인 '큰 곳'에 해당하는 1을 흑이 차지하면 백이 2를 선수 후 4, 6을 감행해 오는 것이 매섭다. 이 그림은 A 근처 어디라도 백 돌이 놓이면 흑 대마 어느 한쪽이 곤마로 몰리게 된다. 중국측도 훗날 ?Y에 대해 "이창호다운 침착하고 두터운 수"란 평가를 내렸다.

86은 기민한 응수타진. 흑이 '가'로 버티면 백 87을 당해 하변이 망가진다. 하지만 백은 대신 나중에 '가'로 끊는 노림을 남겼다. 결국 대망의 88은 백의 수중에 떨어졌다. 20집은 충분한 '엄청 큰' 자리. 이 시점에서 최규병 九단은 "흑이 극미(極微)하나마 두터운 형세"라고 진단했다. "이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예전의 이창호였다면…"이란 독백과 함께.

93도 매우 큰 곳. 이 수로 94면 백이 먼저 '나'로 와 선수 12집을 해치우게 된다. 결국 99까지의 응접도 필연이었던 셈. 100은 아마추어 눈에도 탐나는 호처다. 그리고 이 일대가 얼마 뒤 이 판의 명암을 가르는 결정적 승부처로 떠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