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제공권

〈제10보〉(127~138)=똑같은 바둑이지만 흑백의 돌들이 판 위에 펼쳐져 쌓여가는 상(相)은 사람들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바둑은 서로 잘게 썰어가면서 위협하다 챙기고, 챙길 듯하다 공격하는 흐름이다. 이창호가 가장 능기로 삼는 전법이기도 하다. 예전엔 중반전까지 형세가 미세하면 프로들조차 "계산서가 나온 모양"이라며 거의 무조건 이창호의 승리를 예견하곤 했다. 종반 마무리의 신화요 교과서였던 이창호지만 오늘은 어째 예전 같지 않다.

127 이하 132까지는 이렇게 될 자리. 원래 흑으로선 이 부근을 참고도 1로 눌러갈 수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주변 여건상 4의 절단이 무섭다. 흑이 A 언저리에 돌이 놓여있었다면 참고도 1, 3이 성립하고 그쪽이 무조건 득이었다. 앞서 백에게 중원 제공권을 내준 것이 새삼 후회된다. 바둑이 되는 날은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을 타게 되는 법인데….

133은 요소(要所)이긴 하지만 134로 차단되고 보니 좌변의 위 아래 흑은 여전히 엷다. 133에 6분이나 쓴 것은 마지막으로 형세를 면밀히 판단하겠다는 뜻. 그리고 흑은 여기서부터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백은 1시간 이상이나 남아있는 '시간 부자'다. 138의 평범한 선수 활용에도 흑은 응수하기가 꽤 까다롭다. 어떻게 받는 것이 최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