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은 울지만… 부산은 행복해

미국 팝 아트의 '전설'인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의 작품 5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세계가 복합쇼핑몰 부산 센텀시티 오픈 기념으로 6층 신세계갤러리에서 3일부터 열고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전(展)은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적 기법을 보여주는 〈우는 여인〉(1963)을 비롯, 기하학적 추상을 담은 70~80년대 작품과 실내 풍경에 망점 처리를 곁들인 후기 작품까지 망라돼 있다. 워홀 역시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왔다. 워홀의 70년대 팝 아트를 본 관람객 일부는 '역시 워홀'이라며 작은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지명문 신세계갤러리 관장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국내 다른 전시에 몇 점씩 포함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집중적으로 소개된 전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은 삼성비자금 사건 당시 유명해진 〈행복한 눈물〉의 작가로 작품과 함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를 크게 확대한 뒤 검은 외곽선을 그리는 등 작은 변화를 줘서, 만화인지 예술작품인지 혼란스럽게 했다. 워홀(Andy Warhol·1928~ 1987)은 마릴린 먼로같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나 깡통 수프 같은 사물을 반복해 그리는 기법을 통해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두 사람은 이해하기 쉽고 친근한 이미지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려 환호를 받았고, 이들의 세례를 받은 팝 아트는 미술계를 풍미하고 있다.

신세계는 백화점 충무로 본점(신관)의 문을 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놓았다. 옥상에는 세계적인 조각가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을 비롯, 헨리 무어와 알렉산더 칼더, 호안 미로의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매장에도 김환기·남관·유영국·권옥연·서도호의 작품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하는 대형 유통업체인 신세계가 유명 갤러리 못지않은 전시 기획을 마련하고 미술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문화 마케팅적인 측면도 있지만,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미술품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희 회장은 이화여대 미대 출신으로 요즘도 직접 그림을 그린다.

신세계가 팝 아트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을 특별 전시하는 것은 업(業)의 지향점과도 부합한다. 정통 갤러리가 아닌 대중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인 백화점에 거장의 걸작을 선보여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의도다.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전(展)은 관람객이 밀려들고 있다. 휴일인 8일 하루에만 1만2100여명이 다녀갔다. 부산 전시는 25일까지.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시는 3월 27일~4월 14일. 부산 문의 (051)745-1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