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alk 튀네] (4) 원태연, "에로물 빼놓고 다 봤어요"

500만부를 판 시인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11일 개봉을 앞둔 원태연 감독.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등으로 메가 히트를 쳤다. 특유의 서정적인 언어로 수많은 여성팬을 거느린 그가 이젠 스크린에서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서울 강남의 한 편집실에서 직격 인터뷰를 했다. 신인 감독이 한류스타를 '모시고' 영화를 찍었다니 어떨까. 첫 질문부터 직구를 던졌다.

▶스타 시인 영화 데뷔작 '슬픔보다…' 11일 개봉

시쓰는 것보다 어렵죠 70여명의 생각을 모으고 조정하는 역할인데요…

　-그 방송 이후 '이보영 술고래'가 핫클릭으로 떴어요.

▶술 자리 이후에 바로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재촬영을 했죠. 석 잔을 원샷하고도 보영씨는 끄떡없던데. 내가 제일 중요한 장면을 잊어버렸어요. ㅎㅎ. 그 뒤로는 무조건 보영씨 말에 '네' '네'만 해요. 글은 자세히 쓰는데, 혼자 오래 작업을 하다보니 이상하게 말이 짧아요. 배우들 고생이 심했죠.

-13년간 영화 연출을 준비했다면서요?

▶신씨네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처음 참여했어요. '시월애'로 처음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죠. 매번 영화는 감독 거구나 실감했어요.

　-크랭크 인 전 7개월간 비디오 방에서 살았다면서요.

▶에로 빼놓고 다 봤어요. 말이 되도록 찍는 게 참 힘들구나 실감했어요. 촬영 막판엔 등을 뒤로 젖히고, 좀 건방지게 모니터를 보고 싶던데…. 21회차 마지막 촬영까지 잔뜩 긴장을 하더라구요.

　-배우들 흉 좀 봐주세요.

▶진짜 없는데.

-에잇 말이 되요? 예를 들어, 발음 문제가 있다거나….

▶선입견이에욧!! 한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그리고 진정한 디렉션의 기준은 배우 아닙니까. 감독은 배우를 베이스에 놓고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음음음, 그럼 구체적으로 세 배우를 평해주세요.

▶(이)범수씨는 "네"란 대사가 상당히 많았어요. 의문, 확인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는. 그런데 컴퓨터 같이 상황에 맞는 감정을 그 짧은 단어 안에 담아내더라구요. 상우씨가 우는 장면 봤어요? 정말 사정없이 망가졌죠?

　-한류스타로서 '가오'는 포기했던데요. 홍일점 이보영은요?

▶모니터를 보던 내가 운 적이 있어요. 울면서 도로로 뛰어가는 장면인데, 세 테이크를 찍었죠. 매번 똑같은 순도의 감정을 정확한 타이밍에 뽑아내더군요. 무서운 사람이다 싶었죠.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고 있는데 이보영이 편집실에 들어섰다. 원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편집실을 찾은 이보영은 "감독님 때문에 졸지에 '술고래'가 됐다"고 활짝 웃었다. "촬영 도중 언쟁이 시작되자, 감독님이 강제로 소주 석 잔을 유리잔으로 먹였다. 그런데 방송에서 내가 강권한 듯이 이야기했다"는 것. 화제는 최근 전파를 탄 '무릎팍도사'(MBC)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이모개 촬영 감독 등 원 감독만 빼고는 충무로에서 다 쟁쟁한 분들인데. ㅎㅎ

▶한번도 부딪친 적은 없어요. 내 생각과 느낌을 정확히 스크린에 옮겨주시더라구요.

　-그런데 왜 영화가 더 힘들다고 해요?

▶시 쓸 때는 머리 뒤에서 오는 느낌을 그대로 적어요. 그런데 영화는 70명의 생각을 모아야 하잖아요. 그들이 편하게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조정자의 역할, 쉽지 않더군요.

　-돈 많이 벌었죠?

▶절대 아니에요. 첫 책도 인세를 제대로 못받았고, 세번째 시집인가. 알고봤더니 출판사 대표가 사이비 종교 부교주였어요. 시집 판 돈으로 무슨 성전을 지었다던데요?

-그럼 이번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흥행 성적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책을 아홉권 냈는데, 150만권도 팔아보고 2만권도 팔아봤어요. 상업적 성공은 예상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내가 갖고 있는 느낌을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매체를 만났다는 점이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