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아쉬운 뒷맛

〈총보〉(1~219)=한국 바둑의 한쪽 날개를 맡고 있는 이창호가 중국의 간판기사 구리에게 패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단순히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이창호가 무수히 많은 기회를 흘려버린 채 자신의 능기(能技)를 거꾸로 상대에게 헌납한 듯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창호는 중반 이후까지도 이 바둑을 자신이 미세하게 앞선 것으로 형세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초반 54의 강타를 맞아 주춤했던 흑은 이후 교묘한 솜씨로 약간씩 리드를 잡아갔으나 결정타를 못 넣고 주춤거렸다. 65·103·139 등이 문제의 완착들. 그러는 사이 꾸준히 따라온 백은 미세해진 바둑을 기어이 역전승을 끌어냈다. 그 흐름이 딱 전성기 때의 이창호 바둑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형세를 오판하지 않고선 천하의 이창호가 이처럼 몸을 사렸을 리 없는 일이다.

재미있는 참고도 하나를 추가로 올린다. 87로 107 자리에 연결하는 것은 14까지의 연단수가 숨어있다. 어쨌든 이세돌의 결승전 파트너는 구리로 결정됐다. 역대 LG배 챔프를 지낸 기사끼리 벌이는 최초의 결승전이다. 또 한 명의 전 LG배 우승자 이창호는 안타깝게도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154…149, 266수 끝 219수 이하 생략, 백 1집 반 승, 소비시간 백 2시간 28분, 흑 2시간 5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