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투쟁, 그녀는 늘 화통하게 맞섰죠"

2003년 3월 28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였던 송신도(87)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 결정했다. 1993년 시작한 10년 법정 투쟁이 패소로 끝난 날이었다. 며칠 뒤 송 할머니는 후원자들 앞에서 일본어로 똑 부러지게 일갈했다. "재판은 졌지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어!(オレの心は負けてない)" '나'를 '와타시(わたし)'가 아니라 남자들 용어인 '오레(オレ)'라고 했다. 16살 꽃처녀 때 온몸으로 전쟁을 겪은 그녀는 그렇게 남자처럼 살아온 것이다. 이 호령이 지난달 26일 극장 개봉한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출발이었다.

안해룡(48)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로 첫 장편영화에 데뷔했다. 전국 9개 극장에서 상영 중인 이 영화는 이제 관객 3000여명을 모았을 뿐이지만 그 작은 호응은 매우 뜨겁다. 11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안 감독을 만났다. 명함을 받아 '해룡(海龍)'이란 이름의 뜻을 묻자 "토룡(土龍)이 지렁이니까, 저는 갯지렁이쯤 되는 셈"이라며 껄껄 웃었다.

"2003년 재판이 다 끝난 뒤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송 할머니의 법정 투쟁을 찍은 영상을 편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중에 재판 뒤풀이 장면이 있었어요. 할머니를 지원해온 일본 시민단체 회원 중 한 사람이 생일을 맞았고 할머니가 즉석에서 축하 노래를 불렀죠.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송 할머니의 지난한 싸움 뒤에는 일본 시민단체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지원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안 감독의 제안을 받고 제작비 모금을 시작, 670명이 총 600여만엔(당시 환율 약 6000만원)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일본 시민운동에 대한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 일본군위안부의 법정 투쟁을 10년이나 지원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요."

지원모임으로부터 받은 자료는 비디오테이프 50시간 분량, 사진 수천장, 오디오테이프 40시간 분량이었다. 정리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2005년 6월부터 새 영상을 찍기 시작해 이 모두를 95분으로 압축했다. 2007년 8월 일본에서 첫 상영회를 열었다.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사민당 당수를 비롯한 일본 여성 국회의원들도 이 영화를 관람했다. 그는 "감독으로서 이런 영상자료를 얻어 편집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고 했다.

송 할머니의 엉뚱한 모습은 영화에 잔재미를 불어넣었다. 할머니는 "두번 다시 전쟁하지 말라"고 호통치는가 하면, 술도 잘 마시고 기자회견장에서 불쑥 노래도 부른다. 카키색 군복을 입은 일본군이 위안소 가득 몰려온 장면을 "위안소에 노란꽃이 피었다"고 말할 만큼 표현력도 뛰어나다. 안 감독은 "할머니가 하소연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이 힘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제작비를 기부금으로 충당한 덕에 발생하는 수입 전액이 흑자"라는 안 감독은 "수익 대부분은 한국과 일본, 중국, 필리핀의 일본군위안부 관련 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송신도 할머니는…

송신도 할머니는 1922년 충남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부모가 정한 결혼을 했다가 첫날밤에 달아나 가출했다. 이때 "전장에 가면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 살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 우창(武昌)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몸과 마음을 유린당했다. 1945년 일본 패전 뒤 한 일본군의 꾐에 빠져 일본으로 갔지만 곧바로 버림받고 그 후 한국인 하재은씨와 만나 함께 살았다. 하씨와는 사별했다. 일본 거주 종군위안부로는 처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 줄곧 증언과 강연을 해왔으며, 1997년 제9회 타다 요코 반권력인권상을 받았다. 현재 일본 미야기현에서 애견 마리코와 단둘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