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의 힘을 보여줄게

서울은 예술에서도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앙집권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미술 역시 예외일 수는 없는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painted painting》전(展)은 대구 미술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교준·장승택·홍승혜·남춘모·정은주·박종규·노병열·윤종주 등 8명의 참여작가 중 홍승혜와 장승택을 제외한 6명의 작가가 모두 대구에서 활동 중이다. 홍승혜와 장승택도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대구에서 전시회를 갖는 등 인연이 있다.

《painted painting》전에서 작품을 꿰뚫고 있는 것은 미니멀리즘과 단색(單色)주의 회화다. 대구 지역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갖고 전시장에 들어선다면 극도로 절제된 선과 색으로 승화된 세련미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잊혀져 왔지만 대구는 한국미술사에서 서울 못지않은 미술의 장(場)이 활발하게 펼쳐진 곳이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열린 '대구현대미술제'는 현대미술 축제로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단색주의 회화 같이 전위적인 미술운동을 수용했다. 대구현대미술제를 통해 일본 화단과의 연계가 이어졌고, 호리 코사이 같은 일본 작가는 서울이 아닌 대구 전시를 선호할 정도였다.

대구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축이었던 고(故) 황현욱 인공화랑 대표다.

황 대표는 1980년대 대구에서 이교준과 박현기(비디오 아트), 권부문(사진) 같은 작가들과 함께 현대미술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 대구에서 현대미술이 꽃피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황 대표는 서울로 옮겨와 대학로에 천장 높이가 5m가 넘는 파격적인 전시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전시 공간에 따라 작품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울의 인공화랑에서 누가 첫 개인전을 여느냐가 미술계의 화제가 될 정도였다. 인공화랑은 1990년대 초 미니멀리즘의 대가인 도널드 저드와 전위예술가 리처드 롱, 이우환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대형 화랑 못지않은 전시를 기획했다. 황현욱씨는 현대미술에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새 바람을 일으켰고, 서울과 대구 미술계의 다리 역할을 했다.

《painted painting》전을 기획한 황인씨는 "현대미술의 대가인 요셉 보이스(Beuys)의 제자[boys]들이 스승을 위한 전시인 《Beuys' boys》를 열었듯 이번 전시는 황현욱의 아우라를 가진 작가들의 전시인 셈"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지역 미술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서울과 지역이 서로 소통하는 것이고 서로 교류해야 지역 미술도 생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24일까지 아트파크. (02)733-8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