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그랜 토리노' 팔순 거장이 그린 21세기 미국의 얼굴

세상에 또 누가 있을까.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이가. 1955년에 데뷔해 연기자로선 54년간을, 감독으로선 38년간을 보냈으며 4개의 아카데미 상을 가져간 것 이외에도 칸 영화제, 골든 글로브 등 101번의 수상과 61번이나 후보(미국 영화전문데이터베이스 'IMDB'기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Eastwood·79)는 그런 사람이다. 메가폰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카메라 앞에 선 것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존경을 끌어낼 수 있는 존재다.

그가 내놓은 신작 '그랜 토리노'(19일 개봉)에선 이전에도 그랬지만 연기력 역시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후 배우로는 4년 만이다. 많은 이에게 칭송받고 있는 그이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는 도전할 대상으로 가까이하고 싶지도, 가까이할 수도 없는 보수적인 외골수 노인 월트 코왈스키를 택했다.

디트로이트의 한적한 동네. 현관 간이 의자 위에서 하염없이 맥주만 들이켜고, 쇳소리처럼 갈라지는 목소리로 지나가는 이에게 "내 잔디밭 근처에도 오지 마"를 외치는 그의 얼굴엔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아시아계 이웃들에겐 그들을 비하하는 단어인 '국스(gooks)'나 '칭스(chinks)'를 스스럼없이 내뱉는 인종차별주의자다. 아내를 잃고 난 뒤 그의 주변을 지키는 건 그의 목 주름 만큼이나 축 처진 살을 출렁대며 걷는 노견(老犬) 데이지와 자동차인 72년형 '그랜 토리노'뿐이다. 한국전에 참전해 훈장까지 받았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이 죽여야 했던 아이들에 대한 죄과와 번민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