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실직 가장과 가족이 엮는 뭉클한 소나타

의료기기 회사의 총무과장으로 일하던 류헤이(가가와 데루유키)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는 아내 메구미(고이즈미 교코)에게 이 일을 알리지 않은 채 양복을 갖춰 입고 매일 직업안내소로 출근한다. 공원 무료 급식소에서 우연히 만난 고교 동창 역시 똑같은 처지다. 어느 날 류헤이는 동창생이 아내와 동반 자살한 것을 알게 된다.

19일 개봉하는 '도쿄 소나타'는 일본 영화의 뭉근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수작(秀作)이다. 실직한 가장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오랜 세월 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것처럼 보이는) 가부장적 가치관에 대한 보고서로 읽는 게 옳겠다.

영화 시작 직후 직장을 잃는 주인공은 러닝타임 내내 구두 뒤축을 끌며 걷는다. 인간의 번민과 고뇌의 물리적 무게는 두 발에 몰리게 마련이다. 같은 신세인 친구네 집에 가서 친구의 직장 부하 시늉을 내주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울컥 포인트' 중 하나다. 시급 850엔짜리 일자리를 "나는 다니타(회사 이름)의 총무과장이었습니다"라며 거절할 때 이 영화는 조금 괴롭기까지 하다.

난데없이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군에 입대하겠다는 큰아들, 학교 급식비 낼 돈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작은아들, 가슴속 응어리를 누르며 가정주부로 사는 아내…. 겉으로 멀쩡하지만 속으로 곪은 주인공 가족의 모습은 양복 입고 쇼핑몰에 출근해 청소부로 일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똑같다. 결국 가족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곪은 상처를 터뜨린다. 영화 마지막, 대사 한 마디 없는 작은아들의 피아노 실기시험 장면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영화가 끝나도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조금 가벼워진 것은 주인공의 발걸음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더 이상 구두를 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