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선택] 빈민가 쓰레기 더미 속에 퀴즈 정답이 있었네

명곡(名曲)은 차트를 휩쓸 수 있으나, 차트를 휩쓴 노래가 명곡은 아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19일 개봉)가 오스카를 8개나 거머쥐었다고 해서 마음의 거문고를 울리는 명작이라고 하긴 어렵다. 이것이 실화(實話) 또는 실화를 각색한 것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경찰의 대사처럼 "이상하게 사실처럼 들리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슬럼독…'은 이번 주 개봉 영화들 중 가장 추천할 만하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즐겁게 2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것'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인도 뭄바이 근처 빈민굴에서 자란 고아 자말은 엄청난 상금이 걸린 TV 퀴즈쇼에 나간다. 단 하루도 학교에 다닌 적 없이 길거리에서 자란 그는 애초 퀴즈를 맞힐 능력이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문제는 모두 그가 온갖 험지를 누비며 맨몸으로 배웠던 것들로부터 나온다. 2000만루피(약 5억5000만원)가 걸린 마지막 문제를 앞두고 경찰은 그를 사기죄로 체포한다. 흉계를 털어놓으라는 경찰 앞에서 자말은 자신의 짧고 험난한 인생을 되돌아본다.

▶전문가 별점

·인생의 행운이라는 발리우드 영화의 주제와 어두운 현실이 흥미롭게 교차하는 영화. 무거운 주제를 녹여내는 솜씨가 좋다. ★★★★

( 이상용·영화평론가)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한 이야기, 단지 진지하다고 하기엔 너무 발랄한 쇼.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

이 영화를 반드시 인도에서 찍을 필요는 없었다. 자본주의를 도입한 어떤 나라에도 밀리어네어(백만장자)를 꿈꾸는 슬럼독(slumdog·빈민가 출신)들이 우글대기 때문이다. '트레인스포팅'을 연출한 대니 보일 감독은 그 중 인도를 택해 역동적이고 화려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그가 찍고 편집한 화면이 인도 빈민가의 극단적 불우함을 상업적으로 써먹었다는 비판은 타당성 있다. 그러나 그런 장면들이 없었다면 이 영화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비카스 스와루프의 원작 소설 'Q & A'의 형식을 고스란히 빌려왔다. 퀴즈 정답을 맞히는 장면과 그와 관련된 주인공의 험한 인생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보일 감독은 스와루프에게 큰 빚을 졌다. 다만 원작과는 다른 설정과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퀴즈 문제조차 원작과 같은 것이 거의 없다. 함석 지붕들이 끝없이 맞닿아 있는 인도 빈민가의 여러 풍경은 이국적 흥취를 풍긴다. 똥통과 쓰레기 더미를 구르며 해맑게 웃는 인도 꼬마 배우들은 사랑스럽다. 타지마할 관광객들의 신발을 훔치고 빈 페트병에 수돗물을 담아 생수로 파는 짓들도 우스꽝스럽다. 등받이에 기대 앉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관객에겐 '먼 나라 얘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잉여생산물을 낳고 잉여생산물은 쓰레기를 낳는다. 이 영화는 '인간 쓰레기' 취급받는 빈민가 아이들이 그 쓰레기 속에서 '(퀴즈쇼 우승을 위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우는 과정인 셈이다. 그 삶은 참담하고 분통 터지지만, 주인공 홀로 그 생지옥을 뚫고 영웅이 된다. 이 영화가 끝내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영웅담'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아카데미를 비롯한 서구 영화제가 이 영화에 샴페인과 폭죽을 터뜨려 준 이유를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