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가 아니라 공포다

영화 ‘실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작년 이맘 때쯤 깜짝 흥행을 기록했던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얼마 전 강호순 사건 덕분에 뒤숭숭해진 사회의 분위기도 더불어 함께 오버랩 된다. 정작 영화를 만든 김성홍 감독은 이러한 연상 작용들에 강한 우려를 표출했지만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사회면의 끔찍한 기사 한 토막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김성홍 감독의 억울한 심정을 다른 의미에서 수긍할 수 있게 됐다. 영화 ‘실종’은 ‘추격자’와 대비할 만한 스릴러 영화이거나, 추악한 사회상을 되짚는 시사고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고한 여자를 납치·감금한 뒤 온갖 가학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악질 연쇄살인범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 가학성의 정도가 사람들의 상식 선에서 일반적인 리얼리티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게 문제다. 지하실 구석의 암흑 속에 개처럼 가둬둔다든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성 고문, 그리고 비정한 살해방식 등이 지나치게 영화적으로 묘사된 탓에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영화 ‘실종’은 현재 대한민국의 모진 사회상을 반영하고, 빈번한 납치·살해 사건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한국형 스릴러 영화라고 보기에는,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면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공감대는 다소 엉뚱한 쪽에서 형성된다.

‘판곤(문성근)’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구제할 만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행태를 과감히 연기한 배우의 열연으로 관객들은 색다른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던 현정(추자현)을 노려보는 판곤의 충혈된 눈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라 굶주림에 포악해진 짐승의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로서가 아닌 공포 영화로서 관객과 공감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훨씬 수월해 보인다.

3월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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