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신 기업은행PB팀장"MMF잔액·금값 추이 보며 투자 타이밍 저울질" 권성호 외환은행PB팀장"서울 핵심 지역의 수익형 부동산에 군침" 이윤진 굿모닝신한증권PB팀장"우량주에 직접투자해 펀드손실회복" 류남현 삼성증권부장 "달러약세·인플레이션 우려 원자재펀드 관심 높아"
왼쪽부터 강우신, 권성호, 류남현, 이윤진.
"주가나 집값도 이제 바닥을 친 걸까요?"
'재테크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권에선 최근 들어 '바닥론'이 화제다. 찬바람 쌩쌩 불던 주식시장에 모처럼 봄기운이 살짝 스며드는 듯 보여지면서 재테크 사냥감을 고민하는 것이다. 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에서도 1월 주택가격이 전월 대비 1.7% 올라 1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바닥 탈출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돈의 향방에 민감한 부자들은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떻게 돈을 굴리고 있을까. 서울 강남·분당 지역 부자들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PB(프라이빗뱅커·거액 자산가를 위한 금융서비스)팀장 4명으로부터 부자들의 재테크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토론에는 강우신 기업은행 PB팀장·권성호 외환은행 PB팀장·류남현 삼성증권 부장·이윤진 굿모닝신한증권 PB팀장이 참석했다.
◆유동성 기대감 '솔솔'
―시중에 많이 풀린 유동성으로 시장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많다. 그러나 정작 투자 쪽으로 방향을 틀고 결단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원금손실 등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여서 주식시장이 조금 달아오른다고 해서 생각을 바꾸진 않는다.
―MMF 잔액과 금값 추이를 지켜보는 큰손 고객들이 많다. 최근 MMF 잔액이 그렇게 크게 늘어난 것은 한두 명이 움직여서라기보다는 일련의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MMF 잔액이 130조원 근처에서 100조원 밑으로 떨어지고 금값도 안정화한다면 그때가 바로 투자에 뛰어들 타이밍이라고 말한다. 돈을 벌 수 있는 낌새만 보인다면 뭉칫돈은 쏜살같이 움직일 것이다.
―유동성 장세에서는 파도만 잘 타면 지금까지 잃은 손실을 한번에 메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부 고객들은 당장 투자액을 늘리자고 우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고통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말리고 있다. 현재의 경기 침체가 앞으로 얼마나 깊고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험 정신이 상대적으로 강한 40·50대 연령층엔 석달 정도만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두고 시장을 지켜보자고 권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부동산"
―정부가 양도세 중과 폐지 등 부동산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있지만 이런 흐름에 편승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초저금리에다가 뾰족한 투자 대안이 없다 보니 연 7% 정도 수익이 나오는 건물 등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일대나 사대문 안쪽이라고 지역을 콕 찍어서 구해달라고 한다.
―주식이나 펀드로 쓴맛을 보고 배탈이 났던 고객들은 '누가 뭐라 해도 역시 부동산'이라고 말한다. 역외펀드 같은 것에 선물환 걸어 투자했다가 몽땅 날리고 나니, 차라리 부동산은 건물이라도 남지 않느냐는 본전 생각 같다. 향후 인플레이션이 오게 될 것에 대비하려면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이 최고라는 믿음도 강하다. 이런 수요가 늘고 있어서인지 핵심 지역 부동산(상업용 건물 등)은 값도 많이 떨어지지 않고 매물도 별로 없다.
―수익형 부동산은 경기 침체로 장사가 잘 안 되면 임대 수입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한다. 그러나 지금쯤 사 두면 나중에 경기가 좋아졌을 때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은 자녀 증여 등의 목적에서 약간 관심을 갖는 정도다.
◆과감한 구조조정
―자산가들은 아무래도 여윳돈이 있으니까 무리해서 시장에서 탈출하진 않는다. 하지만 일부 투자 포트폴리오는 조정한다. 우선 러시아·인도·브릭스 등 해외 펀드는 환매해서 국내나 중국 본토 펀드로 갈아타고 있다. 이들 지역 전망이 나빠서 환매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경기가 회복할 때 한국이나 중국 본토만큼 빠르게 회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올해 말에 해외펀드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종료된다는 것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장기 불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많다. 현금자산이 50억원 이상인 큰손들은 최근 경기 침체에도 별 타격이 없지만 10억원대 정도인 분들, 특히 의사나 변호사 등 일부 전문직들은 해외여행 두번 다녀올 것을 한번으로 줄이고 골프 횟수도 줄이면서 소비를 줄이더라.
◆부자들에게 꽂힌 상품은
―극도로 위축된 경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부자들은 없다. 돈 될 만한 곳이 어디인지 끊임없이 대안을 찾고 있다.
―원자재펀드에 대해선 고객들이 유일하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달러 유동성이 증가해 달러 가치가 곧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거액 자산가들은 물가연동국채 같은 인플레이션 대안이 되는 상품에도 기웃거린다.
―펀드에 하도 당해서인지 주식 직접투자를 하거나 혹은 하겠다는 고객들이 많다. 대형 우량주를 주로 사지만, 중소형주 중에선 대체 에너지 등 정책 관련주에 관심을 갖는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금융주 등에 직접 투자하기도 하더라. 씨티은행 같은 건 한때 1달러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2.6달러 정도로 두 배 이상 올랐다.
―국내 대기업이나 은행들이 외화를 조달하려고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 일명 외화표시채권도 인기다. 수익률이 연 20% 정도까지 나올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일부 자산가들은 펀드 손실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50만달러, 100만달러씩 거액으로 투자한다. 단, 거래 단위가 수억원이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