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화 불법 다운로드 주목하고 있다"

연 300억달러(약 39조원) 규모 산업을 대표하는 남자는 아담한 체구의 60대 초반 신사였다. A 로버트 피사노(Pisano·63) 미국영화협회(MPAA·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 회장의 첫인상은 온화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6일 오전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만난 그는 "하우 아 유(How are you)?"라고 말한 뒤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했다.

미국영화협회 소속 영화사는 6개뿐이다. 세계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다. 그 6개의 영화사는 파라마운트·워너브러더스·디즈니·소니·유니버설·20세기폭스(매출액 순·2007년). 미국 영화산업의 80%를 차지하는 영화사들이다. 피사노 회장의 공식직함은 '회장 겸 최고업무책임자(President and Chief Operating Officer)'. 2005년 회장에 취임한 그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영화산업의 현황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물론 한국 내 미국영화의 위상도 확인해야겠죠. 특히 한국의 영화 불법 다운로드(online piracy)가 어떤 상황인지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방문 목적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관심의 순서를 역(逆)으로 말한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인터넷이 발달한 만큼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심각합니다만.

"불법 다운로드는 한국과 미국영화산업의 중대한 문제점입니다. 사실 모든 나라의 문제이기도 하죠. 예술창작물이 도둑맞는 일은 어디서나 없어야 하니까요." 피사노 회장은 2주 전 같은 목적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영화계가 8개 웹하드 업체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인터넷상 불법에 대한 미국영화협회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첫째, 모든 사람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강력한 사전 경고를 합니다. 둘째, 저작권을 훔치는 사람에 대한 인터넷 서비스를 강제 중단시키며, 셋째로 불법을 방조한 회사들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죠."

―최근에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 인터넷에 유출됐는데요.

"무척 불행한 일이죠. 제작 당시는 물론이고 후반작업 때도 철통 같은 보안시스템을 갖췄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 의해 유출돼 버렸습니다."

―해킹당한 걸까요.

"해커는 아닙니다. 누군가 후반작업 때 현장에서 빼낸 것이죠.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소행이란 뜻이죠. 유출본은 아직 완성이 안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엑스맨' 팬사이트에 '유출본을 보지 마라. 그건 잘못된 영화다'라는 글이 뜨고 있습니다."

―미국영화협회는 어떤 활동을 합니까.

"6개 메이저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지요. 제작부터 배급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해서 미국 영화를 더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영화협회는 미국 내 개봉영화에 등급을 매기는 단체지요.

"1968년에 부모들에게 영화 내용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들을 등급심의위원으로 초빙해서 '부모의 시각'으로 정하도록 한 것이죠."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영화사들은 어떻게 하나요.

"일단 회원사들은 의무적으로 등급심의를 받습니다. 비회원사들도 대부분 심의를 의뢰하지요. 우리 협회가 등급 심의를 하는 영화는 연 900편이나 됩니다. 등급을 받지 않는 독립영화는 1년에 3, 4개 작품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영국 감독이 인도에서 찍었는데 아카데미상을 8개나 탔습니다. 미국 영화계의 정치적 판단이란 견해도 있습니다.

"영화의 핵심(essence)은 스토리입니다. '슬럼독'은 매우 독특한 스토리를 갖고 있죠. 대부분 관객은 이런 스토리에 익숙지 않아서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죠. '슬럼독'은 영어 영화이고 우연히 미국 회사가 배급을 맡게 됐죠. 오스카를 휩쓴 것은 이런 스토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영화 중 스토리가 좋은 영화는 '그랜 토리노'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영화가 세계영화 시장의 최강자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단순하기도, 복잡하기도 하죠. 바로 '스토리' 덕분입니다. 제가 MGM과 파라마운트에서 부회장으로 일할 때도 모든 관심은 '누가 이 스토리를 듣고 싶어할까'와 '어떻게 이 스토리를 전달할까'였습니다. 최종 선택된 스토리를 영화로 찍는 것을 우리는 '스토리 전달의 실행(execution of telling story)'이라고 표현할 정돕니다. 그렇게 선택한 스토리도 '실행'이 잘못되면 흥행에 실패하죠."

―한국 영화계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영화산업이 융성하려면 사회가 영화산업을 존중해야 합니다. 문화 속에서 영화가 존중받아야 합니다. 스토리 창작에 대한 많은 지원도 필요하지요."

―앞으로 세계 영화산업은 어떻게 될까요.

"영화는 비교적 값싼 탈출구(escape)입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는 피사노 회장은 "부산영화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며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