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후지쓰배는 우리 땅"

'빼앗긴 들'에도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일본이 주최하는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얘기다. 한국 기사들에게 이 대회는 '우리 땅'으로 통했다.

21년 간 총 13회를 우승했고, 특히 98년 11회 때부터 2007년 20회 대회까지 장장 10년 동안 연속 태극기를 꽂으면서 한국 바둑의 거점(據點) 역할을 해왔기 때문. 그랬던 후지쓰배가 지난 해 21회 때 11년 만에 중국 구리(古力)에게 넘어갔을 때 우리 팬들은 국토의 일부를 빼앗긴 듯 아쉬워했다.

제22회 후지쓰배가 11일 도쿄에서 막을 올렸다. 13일 2회전까지 치른 결과 한국은 이세돌 강동윤 이창호 박영훈 등 국내 랭킹 1~4위 기사들이 나란히 8강에 진출, 각 2명씩을 올려놓은 일본과 중국을 압도했다.

최근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던 이창호는 일본 다카오(高尾紳路)를, 세 차례나 후지쓰배를 정복했던 이세돌은 일본 톱스타 장쉬를 각각 흑 불계로 따돌렸다.

또 후지쓰배 2회 우승을 발판으로 출세길을 닦았던 박영훈은 중국 셰허(謝赫)에게 흑 1집 반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통산 3연승, '천적'다운 위용을 과시했다. 최근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강동윤도 20세 동갑내기 라이벌 이야마(井山裕太)를 백으로 KO시키며 8강행 열차에 동승했다.

총 6명이 출전한 한국의 나머지 선수 최철한 원성진은 첫날 탈락했다. 한편 지난 해 우승자 구리(古力)는 일본 고노린(河野臨)에게 흑 불계패, 이변을 연출했다.

오랜 세월 후지쓰 땅의 '실효적 지배자'였던 한국, 원래 지주(地主) 일본과 현 '등기권자'인 중국의 각오가 정면으로 충돌할 8강전은 오는 6월 6일 서울에서 벌어진다.

추첨으로 결정된 8강 대진표는 이창호 대 야마시타(이창호 5승 무패), 이세돌 대 창하오(이세돌 7승5패), 박영훈 대 고노린(박영훈 1승 무패), 강동윤 대 중국 박문요(쌍방 1대1)전으로 짜였다. 후지쓰배 우승상금은 1500만엔(약 2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