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젊은 애인과 성난 전처가 만났을 때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나이 먹고 몸이 늙는다고 그 감정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올해 74세인 미국 감독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면 분명해 보인다. 그는 15일 개봉할 신작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원제 Vicky Christina Barcelona)'에서 30대 감독처럼 사랑의 모습을 그린다. 그의 연륜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란 감정은 연애로 구체화하고 결혼과 이혼이란 제도를 거치면서 닳고 헐기 마련이라는 자조(自嘲)다. 그러나 풍화와 부식을 겪은 사랑 안에도 여전히 복숭아 씨앗처럼 단단한 무엇이 있다. 인간은 아직 이 '단단한 무엇'을 한 단어로 정의하지 못했다.

친구인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와 비키(레베카 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놀러 갔다가 이혼한 화가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를 만난다.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안토니오에게 비키는 질색을 하고 크리스티나는 호기심을 갖는다. 결국 크리스티나와 비키 모두 안토니오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빠져든다. 비키가 바르셀로나에 찾아온 약혼자와 만나는 사이 크리스티나는 안토니오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어느 날 갑자기 안토니오의 전처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가 찾아와 세 사람이 동거를 하게 된다.

이 영화 속 한 남자와 세 여자는 모두 이율배반적 행동을 한다. 크리스티나는 "뭐든지 확실히 싫을 때까지는" 거절하지 않는다. 비키는 그와 정반대 성격. 뭐든지 확신이 설 때까지는 의심한다. 안토니오와 마리아는 서로 너무 달라 이혼했으나, 종종 서로 둘도 없이 의지한다.

그럼에도 한 남자와 그에게 빠져드는 세 여자의 행동이 묘한 설득력을 지니는 건, 에둘러 말하지 않고 툭툭 던지는 우디 앨런의 화법 덕분이다. 이 영화 주인공들은 홍상수 영화 등장인물들이 그렇듯,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현실의 언어들을 내뱉는다. 그렇기에 '15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을 받은 이 영화는 '스무 살 미만 이해 불가'일 수도 있다. 남자는 처음 만난 두 여자에게 대뜸 "멋진 섬에 가서 잠자리도 같이하고 놀자"고 제안한다. 이혼한 아내에 대해서는 "우리는 서로 좋아하지만 정말 안 맞아"라고 말한다. 처음 본 이성에게 "같이 자자"고 하는 것과 전처에 대해 "정말 안 맞지만 좋아한다"고 하는 것 모두 비합리적이지만, 영화는 진행된다. 사랑은 어차피 합리성에 뿌리내리지 않으므로.

안토니오가 어깨가 아프다고 할 때 새 애인은 아스피린을 주려고 하고 전처는 익숙한 솜씨로 어깨를 주물러 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그를 잘 알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예전과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경우도 드물다.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페넬로페 크루즈의 성난 고양이 같은 연기가 돋보인다. 그녀가 비아냥대거나 소리 지를 때 스페인어를 쓰지 않았다면 수상까지는 어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