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즐기는 구리

〈제11보〉(143~154)=이번 LG배 결승전의 패배는 이세돌 본인뿐 아니라 우리 바둑계에도 상당한 아픔을 안겨주었다. 한·중 양국의 팽팽한 대치 속에서 양국대표 효장(驍將) 간 맞대결은 상징적 의미가 워낙 컸기 때문. 이세돌의 세계타이틀이 2개로 줄어듦과 동시에 구리는 일약 4관왕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병가(兵家)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늘 겪는 일. 아직 한창나이인 이들 라이벌의 싸움은 정작 이제부터다.

두 대국자쯤 되면 이미 이 백 대마가 결코 잡히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여기서 돌을 거두기엔 너무도 아쉽고 허망하다. 143으로 뻗는 이세돌의 손길이 패배를 눈앞에 두고 부상병을 추스르며 전열을 가다듬는 장수의 그것처럼 처연하다. '나머지 한 눈(眼)'이 필요한 상황에서 144, 148, 150 등은 절대 선수.

152가 놓이면서 이제 백 '가'면 대마는 산다. 그렇다면 흑이 참고도 1로 약점을 지키면? 그것도 10까지 수가 나 역시 대마는 무사하다(백 A가 항상 선수). 흑 153에 백이 당장 '가'로 살지 않고 154에 붙인 것은 그 근방에 아직도 수가 있다는 뜻. 구리가 마무리를 '즐기는' 가운데 종국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