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옥쇄(玉碎)

〈제12보〉(155~172)=구리는 "결승에 앞서 침상에 이세돌 기보집을 갖다 놓고 틈날 때마다 봤다"고 훗날 고백했다. 원래 원정 대국은 불리한 법이건만 만반의 대비로 최상의 상태에서 결승에 임했다. 이세돌 역시 구리에 대한 연구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국 당일 새벽 출발 등 몇 가지 이유로 쾌적한 컨디션 유지에 실패했다. 돌이켜보면 결과보다 그 과정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 현장을 쫓아가 보자. △의 붙임에 155는 당연한 반발. 이 수로 참고1도 1로 반대쪽에서 젖히면 4까지 당장 수가 난다. 157까지 건드려보던 구리, 158로 먹여쳐 일단 대마부터 살았다. 대마불사(大馬不死)란 말은 역시 진리인 모양이다. 159로 중앙을 보강할 겸 참고2도의 2단패(覇)를 노렸지만 161을 안 둘 수도 없다.

흑은 165, 167로 짐짓 딴청을 부리며 옥쇄를 기한다. 172를 기다려 이세돌이 잡았던 백 돌 하나를 조용히 판 위에 올려놓았다. 패배 선언. 흑 '가'면 백 '나'로 나와 축이 성립하지 않고 그쪽 침입군마저 살아간다. 모니터로 지켜보던 관계자들이 우르르 대국장으로 달려갔다. 1년여를 달려온 13회 LG배는 백담사에서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