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향한 산고(産苦)의 흔적을 찾아

'중앙청 앞길에서 새벽에 죽은 아기노루, 도박하는 사내, 소가 넘어간다, 군대 가는 날의 아침풍경, 대중소설 작가 이야기(sex의 묘사), 아버지의 애인, 악어가 먹이를 먹을 때 우는 사실을 압니까.' 비망록이라고 되어 있는 메모지에 쓴 소설가 최인호의 창작 메모에는 한편의 소설을 쓰기 위한 구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에서 5월 31일까지 열리는〈창조의 발상-육필 원고와 초고전〉은 초고(草稿) 노트가 작품으로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김남조·박완서·이어령·김용직·김원일·최인호 등 작가 70명의 육필 원고와 작품 초고가 전시된다. 강인숙 관장은 "초고와 원고를 한자리에 모은 것은, 창조의 발아점과 완성점 사이에서 작가들이 얼마나 힘들게 첨삭의 과정을 겪어나가는지를 알려드리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박완서·권지예·정미경이 육필로 쓴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 황순원의〈움직이는 성〉초고 노트 등도 눈길을 끈다. 소설가 김동리(1913~95)와 시조시인 김상옥(1920~2004)의 유품과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의 방'이 처음으로 마련돼 일반에 공개된다.

김동리의 방은 붓글씨로 쓴 병풍, 한지가 놓인 앉은뱅이 책상 등이 눈길을 끈다. 반면 김상옥의 방은 서서 작업을 하는 입식 테이블과 화구(畵具)가 전시돼 대조를 이룬다. (02)379-3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