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호서의 산 | 좌구산 | 충북 증평-청원

백두대간상의 속리산에서 갈라져나간 한남금북정맥은 충청북도를 동서로 가르며 북쪽으로 올라가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한남금북정맥은 특이한 점이 있다. 속리산에서 칠장산까지 청주의 상당산·구녀산 등을 거치며 60여km에 뻗쳐 있지만, 일부러 찾아갈 만한 뚜렷한 산이 없고 높이도 600m에 미치지 못한다. 이 한남금북정맥에서 오직 좌구산(座龜山·657m)만이 600m에 57m가 더 붙은 높이의 산이다. 이른바 한남금북정맥의 두령이라 할 수 있는 산인 것이다.

좌구산은 산으로서 뛰어난 것이나 볼거리는 없다. 그러나 산세 좋고 물이 좋아 이 지방 사람들은 ‘증평의 알프스’라 부르며 자랑한다. 산행은 첫째 숲이 무성한 데다 흙산이어서 편안하고 포근하며, 아직은 별로 소문이 나지 않아 깨끗하고 조용하다.

좌구산은 지금 크고 좋은 휴양림을 만드는 중이어서 골짜기마다 중장비 소리가 시끄럽고 목수의 망치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완공되면 솟점에서 방고개에 이르는 넓은 산책코스가 나고, 그 주변에 숲속체력단련지구, 나무벽 오르기, 흔들평균대, 징검다리, 줄잡고 건너기, 그물망 타기 등의 체험지구와 야생화단지, 삼림욕로, 펜션형 산막이 들어서서 산행은 이 모든 것을 거치게 되어 있다. 안내표지도 잘 되어 있다.

산이 편안하다고 하지만 산길은 가파른 곳도 있고 갈림길도 여러 군데 있어서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러나 끝내 어려운 곳은 없다. 한결같이 짙은 숲속이어서 호젓하고 봄·여름·가을 산행에 무척 좋을 것 같았다.

좌구산(휴양림) 산행의 중심이 되는 율리 솟점(부점촌)에는 폐교 자리에 훌륭한 펜션식 휴양시설인 율리휴양촌을 만들어 놓았다. 수용인원 80명 규모의 생활관과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 150석의 강당, 그리고 넓은 축구장과 야생화 정원을 갖추고 있다.

좌구산의 한자는 앉는다는 좌(座)자와 거북이라는 뜻의 구(龜)자로 되어 있다. 풍수지리에서 거북이 앉아 있는 형국이라 해서 좌구산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초에는 거북이 아니라 개가 앉아 있다는 뜻으로 개 구(狗)자를 썼다 한다. 첩첩산중이어서 인가가 없는데도 이 산에 오르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해서라는 것이다.

좌구산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봉(奉)씨와 봉여해의 이야기, 그리고 조선조 인조반정과 관계있는 심곡 김치(金緻)의 이야기다. 고려 예종 때 강화도에서 물에 뜬 돌상자 안에 있는 사내아이가 물을 길러온 노파에 의해 발견되어 궁중에 바쳐졌다. 이 아이가 궁중에 바쳐졌다 해서 봉씨 성을 받은 봉우(奉佑)로 봉씨의 시조다.

이 봉우의 자손인 봉여해(奉汝諧)는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한 사육신과 가까웠고,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과는 남매 사이였다. 봉여해는 세조를 죽이려 칼을 품고 대궐로 들어가다 들켜서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그 자손들은 화를 피해 도망쳐 좌구산의 품안인 율리에 숨어들어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그 마을이 율리2리인 솟점 마을 위 봉천 마을이다. 좌구산에서 산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나오는 질마재 바로 아래에 있다.

봉씨들은 질마재에서 서쪽으로 1km  떨어진 망월산(망탑봉·459m)에 올라가 득성지(성을 얻은 땅) 강화도 쪽을 보며 향수를 달래는 풍습이 있었다 한다.

인조반정에 가담한 심곡 김치도 율리와 연관이 있다. 김치는 광해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괴산 능촌으로 이사 와서 살았다.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 김치는 자기 관상을 보고 그 해에 죽을 운명임을 알았다 한다. 다만 물 수 변의 성씨를 만나면 살 수 있다는 것도 미리 알게 되었다. 그 때 인조반정을 꾀하던 심기원(沈器遠)이 천문지리에 밝고 역리 복서에 뛰어난 김치를 괴산으로 찾아와 자기들이 왕으로 모시려는 능양군(인조)의 사주를 보아주도록 부탁했다.

누구의 사주인지를 밝히지 않고 보아주기를 부탁 받은 김치는 사주를 보자마자 이 사주는 가볍게 볼 수 없다며 율리의 율치폭포(봉천 마을에 있음)에 와서 목욕재계하고 소반에 보를 깔고 그 위에 사주를 올려놓고 사주를 풀었다 한다. 김치는 사주를 향해 재배하고 임금이 될 분의 사주임을 심기원에게 밝히고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하고 심기원의 심복이 되었다.

수자 변의 성씨인 심기원을 만나 광해군 밑에서 못 된 짓을 한 탓으로 인조반정 뒤 죽게 된 것을 자기가 자기 운명을 점친 게 맞아떨어져 김치는 살아났고 반정 뒤에는 다시 벼슬까지 하게 되었다. 사주를 본 날 저녁 곤하게 자는데 난데없이 개 짖는 소리가 세 번이나 들려 하인을 시켜 알아보게 했다. 하인은 거북이 모양과 같다 해서 이 산을 좌구산이라 한다는 말을 했다. 천문지리에 밝은 김치는 “아니다 이 산에서 개가 세 번 짖었으니 개를 뜻하는 좌구(狗)산이 맞다. 누가 염탐하러 온 것이 틀림없으니 빨리 떠나자”하고 그 날 밤으로 율리를 떠나 추적자로부터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솟점(부점촌)에서 시작하고 끝낸 산행

안개가 짙어 조망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그러나 한별산악회의 정기산행 날이어서 산행은 강행되었다. 산행들머리인 율리 큰길에는 전주 들머리에 있는 호남제일문 또는 큰 절의 일주문처럼 한자로 ‘좌구산 제일문’이라 쓴 현판이 붙은 큰 문이 세워져 있었다. 율리휴양촌을 지나자 작은 공터에 점촌 버스종점이라는 작은 팻말이 구석에 보였다.

우리는 마을에서 오른편으로 올라간 시멘트 포장길에 들어섰다. 임도는 거미줄처럼 나있고, 임도 삼거리에는 큼직한 안내판이 서있다. 길가 곳곳에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뚱땅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마을을 나선 지 30분이 넘어 방고개에 올라섰다. 이 고개는 구녀성이 있는 구녀산과 좌구산 중간에 있는 고개로, 그 너머는 청원군 미원면이다. 여기서부터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을 타고 왼편(북쪽)으로 가면 좌구산이 나온다.

나무계단이 좌구산 쪽으로 잘 되어 있다. 계단 위 산길 왼편은 잣나무숲이다. 낙엽이 두텁게 깔린 흙길은 편안하고 좋았다. 가파른 곳에는 밧줄이 걸쳐져 있고, 곳곳에 긴 의자들이 놓여 있어 쉬기에도 좋다. 작은 봉우리(제1쉼터)에는 의자가 있고, 좌구산 1.26km, 방고개 0.68km, 주차장 1.72km 안내판이 있다. 방고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여기서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길이 왼편으로 나있다. 여기서는 고스락 쪽과 주차장 쪽 양편에 다 밧줄이 보였다.

한참 이어지는 편안한 길이 끝나면 제2쉼터가 있다. 여기서도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하산길이 왼편으로 갈라진다. 또 한바탕 가파른 비탈길이 있고, 그 위가 돌탑이 있는 봉우리다. 여기저기에 기와조각이 보인다. 아마 근처에 암자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탑봉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올라채면 좌구산 고스락이다. 좌구산 고스락에는 증평산악회가 만들어 놓은 스테인리스 표지와 청원 쪽에서 세운 청원의 최고봉이란 오석표석, 그리고 한남금북정맥이라 새긴 나무표목 등 3개가 서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질마재에서 봉천리를 지나 솟점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잘 이용되지 않고 멀기도 해서 우리는 제2쉼터로 되돌아가 주차장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제2쉼터로 되돌아가 두 줄의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등성이를 돌아가는 산책로가 있고, 나무사다리로 산책로에 내려서면 바로 아래에 갖가지 체련시설이 있는 체련단련지구다.

길은 계속 등성이를 따른다. 이 산길은 증평산림조합이 세운 안내판이 있는 임도 삼거리에서 올라간 길과 만난다. 솟점 주차장에 이르고 보니 점심시간 20분을 합쳐 4시간 남짓의 산행이었다.

산행길잡이

솟점이 들머리이며 끝머리가 된다. 총 산행시간은 약 3시간.

○솟점 → 방고개 → 제1쉼터 → 제2쉼터 → 좌구산 <약 2시간20분 소요>
○솟점 → 데크전망대 → 제1쉼터 → 제2쉼터 → 좌구산 <약 2시간 소요>
○솟점 → 진성사 → 숲속체력단련지구 → 제2쉼터 → 좌구산 <약 1시간40분 소요>
○솟점 → 내봉(봉천리) → 질마재 → 좌구산 <약 3시간 소요>

교통

증평읍은 34번 국도와 36번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다. 증평에서 54번 지방도로 윤리(남쪽)까지 간 다음 남차리에서 미원쪽으로 가는 1번 지방도를 타면 밤티(윤리)를 지나게 된다. 밤티에서 1번 지방도를 버리면 산행들머리인 솟점(부점촌)으로 가는 길이 나선다.

증평에서는 우체국 앞 정류소에서 하루 9회 밤티까지 가는 버스가 있고, 그 가운데 5회는 솟점까지 들어간다.


/ 글·사진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