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없는 여자 이름은 있는 여자

    입력 : 2009.04.28 03:24 | 수정 : 2009.04.28 06:24

    줄리안 오피 전시회… 보편성 뒤 숨은 개별성 표현

    자신의 작품〈진을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 현대 미술 작가 줄리안 오피. 첫 국내 전시를 위해 지난 26일 한국을 찾은 그는“순간 포착 을 통해 영속적인 움직임을 표현했다”고 말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진(jean) 바지를 입고 역동적인 춤에 빠진 여자, 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는 여자…. 옷과 구두, 액세서리는 화려한 색상에 최신 유행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동그라미다. 눈·코·입이나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단순한 원형(圓形).

    29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식 전시회를 여는 줄리안 오피(Julian Opie·51)의 작품 속 인물들이다.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인 오피의 인물은 이렇게 눈·코·입이 없고, 굵고 검은 선으로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된다. 오피는 이것을 'impersonality(비개인성)'라고 표현했다. 그가 그린 인물 대부분은 몸의 움직임이나 인체 곡선만 흑백으로 그려져 언뜻 보기에는 잘 디자인된 표지판 사인 같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춤추는 여성을 그린 작품 제목은 '춤추는 카테리나'이다. 오피는 비개인화된 인물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 반전을 시도한다. 그는 눈·코·입이 없는 수많은 다른 인물 작품에도 '사라''브라이언' 같은 이름을 붙여줬다.

    오피는 "형상은 비개인화했지만 이름을 부여해서 구체적인 인물이라는 개인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속에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보편성을 통해 개별성의 의미를 던지는 것은 오피의 단순 경쾌해 보이는 작품이 생명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장 2층에는 오피가 최근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 나와 관심을 끈다. 전시장 1층 작품과 달리 눈·코·입을 가진 '개인화'된 초상화가 있고, 초상화 스타일의 작품은 그가 몇 년 전부터 17·18세기 초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받은 영향을 보여준다.

    17·18세기 초상화에 맞는 포즈를 취한 인물들이지만 오피의 손을 거치며 단순화됐다. 〈일찍 일을 마친 켄〉같은 작품은 일본 만화 주인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오피의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부터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에 관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구체적인 컬렉션을 하면서 작품에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후지산 풍경〉같은 작품은 일본 목판화를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

    오피는 19세기 일본 우키요에 스타일의 회화에 고속도로를 그려 넣고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법을 더해 현대 문명을 대비시키고 있다. 시대와 문화를 넘나들고 장르의 구분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오피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특별한 메시지는 없다"면서 "개개인이 상상력을 펴고 작품을 이해하면서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줄리안 오피 전시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5월 31일까지 열린다. (02)733-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