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처럼 짓누르던 숙제를 끝낸 느낌"

'5억4000만원'의 사상 최고상금이 걸린 대승부여서였을까. 아니면 마침내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의 계보를 잇게 됐다는 감격 때문이었을까.

23일 대만서 끝난 제6회 잉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우승 직후 전화로 연결된 최철한(24)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4년 전 중국 창하오(常昊)와의 결승서 패배, 한국 '석권전통'을 놓쳤던 죄책감을 스스로 털어낸 기쁨이 흥분의 주범(?)이었는지 모른다.

ㅡ축하한다. 이번 결승을 돌아본다면.

"전체적으로 행운이 따랐다. 싱가포르에서의 1라운드 세 판을 2대1로 예상했고, 내 쪽이 2승이라야 승산이 있다고 봤는데 그대로 됐다."

ㅡ우승은 언제쯤 예감했나.

"3국 승리가 우승의 결정타였다고 생각한다. 4국을 위해 대만에 도착했을 때 긴장감보다는 설렘이 느껴졌다. 4년 전 5회 대회 결승 때의 '질 수도 있다'는 기분과는 확연히 달랐다. 4국은 중반까지 나빴는데도 뭔가 잘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ㅡ이번 대회 우승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했다던데.

"왕십리 연구실에서 박정상 원성진 김지석 박정환 등 동료들과 함께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 국수님(이창호 九단) 바둑은 워낙 많이 봐왔고… 결국은 내 마음자세에 달려있다는 생각에 모든 걸 거는 자세로 임했다."

ㅡ이창호 九단과의 번기(番棋) 결승에서 5대2로 앞서게 됐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이 국수님이 나를 내 실력 이상으로 대접해주시는 것 같다. 끝나고 복기를 해보면 실제보다 형세를 비관하셨던 경우가 꽤 많다.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국수님이 퇴보의 길로 들어섰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ㅡ대마를 통째로 때려잡는 바둑이 유난히 많더라.

"형세가 아리송한데 2가지 길이 있을 경우, 끝내기보다는 대마공격 쪽으로 방향을 잡는 성향이 강하다. 집 싸움은 체질에도 안 맞고 자신도 없다. 보통 기사들하곤 반대인 셈이다."

ㅡ가장 껄끄러운 상대 셋만 꼽는다면?

"세돌이 형, 셰허(謝赫), 그리고… (박)영훈이를 꼽고 싶다. 물론 이 국수님도 빼놓을 수 없다. 몇년 전 세돌이 형하고의 시리즈 대결서 영패했을 때 가장 좌절했었다. 이제 빚을 갚고 싶다."

ㅡ자신감이 많이 붙었을 것 같다. 앞으로 목표는?

"내가 생각해도 나는 확실히 기분에 많이 좌우된다. 몇달 동안 바위처럼 짓누르던 숙제를 즐겁게 끝냈으니 이제 가속도를 붙여가고 싶다. 랭킹(현재 7위)도 우선 5위권에 든 뒤 한발씩 올라가다 보면 내년쯤 1위 탈환도 가능할 것이다."

ㅡ한국 바둑사상 최다 상금이다. 쓸 곳을 생각해 놓았나.

"부모님 드리고, 용돈 좀 두둑이 받아서 동료들과 도와주신 분들에게 거하게 한번 쏠 생각이다. 이 기회에 작년에 졸업한 대학교(외국어대 일어과)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많이 배려해 주셨는데 그 동안 성적이 안 좋아 학교측에 미안했었다."

ㅡ우승 소식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했나.

"부모님이다. 그런 뒤 바로 여자친구와 통화했다. 힘들 때 많이 도와준 사람이다. 아직 공개하기엔 이르니 더 묻지 말라. 바둑계에 종사 중인 사람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