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영화팀의 금주의 선택]도덕과 욕망의 '핏빛 딜레마'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박쥐(30일 개봉)'를 보고 나서 머리가 무거웠다. 이것은 천주교와 구원을 소재로 삼았으나 불교의 가르침을 닮았다. 사랑과 욕망으로 포장되었으나 실존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구상(具象)과 추상(抽象)이 교접하고 영화와 연극이 공존하며 홍상수와 김기덕이 뒤섞여 있다. 그러므로 이 리뷰는 관객에게 유익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 영화를 읽는 수백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따름이다.

신부 상현(송강호)은 성공 가능성 희박한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했다가 죽음에 이르고 수상한 혈액을 받아 되살아난다. 부활해 보니 그는 흡혈인간이 돼 있다. 이후 난치병 환자들에게 '붕대 감은 예수'로 불리는 그는 난치병을 앓는 친구 강우(신하균)와 그의 어머니 라 여사(김해숙)를 만난다. 상현은 친구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보자마자 격렬한 육욕에 빠진다. 미친 듯 쾌락에 탐닉하는 상현과 태주는 급기야 공모해 강우를 죽인다.

이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에밀 졸라의 1867년작 소설 '테레즈 라캥'을 급히 읽었으나 혼돈은 정리되지 않았다. 남자 주인공이 신부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백수건달이고, 뱀파이어가 아니라 육욕에 매몰된 거한(巨漢)이라는 점을 빼면 이야기의 얼개와 진행과정은 소설과 영화가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바로 그 두 가지가 '박쥐'의 뇌관이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에서처럼 박찬욱 감독은 뇌관을 공이로 치지 않고 전기코일로 달궈 터뜨린다.

상현이 백신 개발에 나서는 바이러스 이름이 '이브'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는 원죄로 시작해 심판에 이르는 신·구약 성서의 방대한 서사(敍事)를 2시간13분짜리 이야기로 축약하면서 구원과 멸망, 현세와 내세, 기복(祈福)과 미신의 양날 위 작두타기를 한다. 영화 제목 '박쥐'는 창공과 동굴을 오가는 짐승의 운명에 대한 은유로 해석된다.

어려서 데려다 키운 고아 태주가 오빠 강우와 결혼하면서 엄마 라 여사를 시어머니로 모시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기이하다(졸라의 소설에선 조카와 삼촌이 결혼한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과 번뇌 끝에 실용적 타협을 택하는 영화 속 뱀파이어가 훨씬 놀랍다. 상현은 처음엔 자살한 사람만 골라 피를 빤다. 삼시 세끼 먹을 피를 대느라 뇌사자의 팔뚝에서 주사기로 피를 뽑아 마시고, 기어코 피를 페트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그리고 대사는 이렇다. "뱀파이어는… 식성이나 생활의 리듬 문제 아닐까요?", "(시체에서 피를) 조금 빨아먹다 버리면 일종의 인명 경시 아닐까?".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탁월했다. 영화 막바지 어린 여신도를 강간하려다 끌려 나오는 송강호의 표정은 곧장 나락으로 떨어질 듯해 눈을 피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신들린 여자 같은 김옥빈의 연기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송강호의 노출 연기가 화제이지만, 이 영화가 선정적이라면 손가락이나 발가락, 겨드랑이를 애무하는 섹스신 때문이다.

'박쥐'가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박쥐는 공동경비구역을 훌쩍 벗어나 올드보이와 싸이보그 사이 어딘가를 날고 있기 때문이다. 미리 졸라의 소설을 읽고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면 번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이상용·영화 평론가 ★★★☆

장면을 꽉 채우는 스타일의 매력. 그러나 너무 많이 담긴 이야기.

― 강유정·영화평론가 ★★★

자기 복제의 덫에 걸린 천재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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