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풀어본 한국영화 대격돌

치열한 한국영화 4파전이다. 국정원 사내커플의 좌충우돌 임무 완수기(7급공무원), 미술품 복원 전문가들의 물고 물리는 대형 사기극(인사동 스캔들), 뱀파이어도 피해갈 수 없는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박쥐), 한강 밤섬 표류남과 인근 아파트 주민의 원거리 애정질(김씨표류기). 5월 박스오피스 왕좌를 노리는 국내파 라인업이다. 기발한 소재 만큼이나 주연 남녀 배우들이 뿜어낼 연기 앙상블도 화제다. '7급공무원'은 김하늘-강지환을 앞세웠고, '인사동 스캔들'은 엄정화-김래원, '박쥐' 송강호-김옥빈, '김씨표류기'도 정려원-정재영이 흥행 경쟁의 선두에 섰다. 과연 5월 극장가를 사로잡을 최강의 커플은 누구일까.

　▶김씨표류기< 정재영-정려원>=첩첩'섬'중

자살하기 위해 한강에 뛰어든 남자 김씨(정재영). 깨어난 곳은 한강 위의 무인도, 밤섬. 여자 김씨(정려원)는 좁은 방안에서 꼼짝 않고 인터넷의 익명성과 밤하늘 달 사진에만 집착하는 외톨이. 우연히 밤섬을 향한 그녀의 망원렌즈는 원시인 같은 김씨의 모습에 빠져든다.

남자는 밤섬 모래사장을 칠판 삼아, 그녀는 와인병에 종이 쪽지를 넣어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인간관계가 단절된 섬 속에 살던 이들은 서로를 통해 삶의 희망을 찾아간다.

'김씨표류기'의 정 커플은 강력한 행복 바이러스를 발산한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여백은 이들이 주는 웃음으로 채워진다. 이 정도면 제목을 '정씨표류기'로 바꿔도 좋을 것 같다. 3개월 촬영 기간 동안 두 배우가 마주보고 연기한 건 마지막 2~3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7급공무원< 강지환-김하늘>=희극'여'왕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 김하늘이 국정원에 입사해 지지리 못난 남친과 사건을 해결한다.

김하늘은 웨딩 사진을 찍는 신부로, 화장실에서 물걸레질하는 청소부로, 놀이공원에 놀러온 임산부로, 룸살롱의 에이스로 잘도 변신한다.

상대 남자 배우의 매력을 증폭시킬 줄 아는 여배우로 평가받는 김하늘은 이번 영화에서도 강지환과 환상궁합을 펼쳤다. 영화는 국정원의 각 부서 요원들이 피아식별에 실패할 때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코믹하게 그려냈다.

　▶인사동스캔들< 김래원-엄정화>-팜므'허'탈

그녀에겐 돈이 전부다. 인사동 최대 권력 배태진(엄정화). 그녀는 복원 전문가 이강준(김래원)을 포섭해 안견이 남긴 신비의 그림 '벽안도' 복원에 착수한다. 복원만 성공하면 곧장 일본에 밀매해 수백억원의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있다.

영화는 이강준이 벽안도를 복원하기 위해 '개고생'을 하는 모습과 배태진의 뒤통수를 통렬하게 가격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펼쳐나간다.

사상 최악의 악녀로 변신한 엄정화는 맨 몸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나야 하는 세상살이의 허탈함을 확인시켜준다.

　▶박쥐< 송강호-김옥빈>-백'혈'번뇌

흡혈귀를 이런 식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다. '생계형 흡혈귀'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피를 냉동보관하는가 하면, 환자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아 허기를 달래고, 관 대신 옷장 속에서 낮잠을 잔다.

송강호가 고뇌하는 흡혈귀라면 김옥빈은 '엔조이형' 뱀파이어다. 송강호가 '지속가능한 흡혈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면 김옥빈은 순수한 미식가이자 왕성한 대식가다.

인간의 욕망, 본성을 표현하는 박찬욱 감독의 방식에 익숙지 않은 관객이라면 식전-식후 30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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