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선택] '고뇌' 벗어던진 SF의 통쾌한 한방

오랫동안 이런 SF 영화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배트맨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시킬까 말까 고민하는 종류의 영화들이 태평양을 줄줄이 건너오면서, 공상과학 영화에도 철학적 메시지가 관성처럼 담기곤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주탐험대가 악의 무리를 통쾌하게 무찌르는 영화가 가장 즐겁지 않았던가. 7일 개봉하는 미국영화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은 단순하다. 우주력(宇宙曆)으로 '2258.42'에 벌어지는 아군과 적군의 전쟁이다. 쉽고 재미있고 뒤끝 없다.

우주함선 USS엔터프라이즈호를 커크 함장이 목숨 바쳐 살려내던 날, 그의 아들 제임스(크리스 파인)가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모험을 좋아하고 커서는 고집불통이 된 제임스는 얼떨결에 엔터프라이즈호 대원이 된다. 그는 함선에서 불칸족과 인간의 혼혈인 스팍(재커리 퀸토)과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우주 무법자 네로(에릭 바나)의 도전에 함께 맞선다.

'스타 트렉'은 오래전 AFKN(미군방송)을 통해 한국에서도 인기 끌었던 TV 시리즈이며, 1966년 미국 TV에 첫선을 보인 뒤 2005년까지 총 6개 시리즈로 제작됐다. 영화와 게임으로도 수십 차례 만들어졌으며 이번 개봉작이 영화로는 11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스타워즈'에 비해 한국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귀 끝이 뾰족한 스팍의 이미지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철학적 SF 영화를 보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관객들을 위한 처방전대로 만들어졌다. 별다른 복선이나 중의법, 해석이 필요한 상징도 없다. 고집불통 사고뭉치 주인공과 합리적이고 냉정한 그의 라이벌, 코믹하고 귀여운 조연들, 섹시한 여자 조연까지 출연진 구성도 액션영화 고전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3'를 연출한 JJ 에이브람스 감독은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놓고 오로지 실감 나는 세트와 컴퓨터 그래픽에 전력투구해, 장쾌한 볼거리를 주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물론 속편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영화에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이 즐겨 쓰는 특수효과가 거의 다 들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미 내용과 캐릭터가 다 알려진 이야기를 재창조하면서 감독은 디테일과 화면구성에 가장 큰 목표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달성됐다.

꼬마 제임스의 자동차 폭주 장면과 악당들이 지구에 설치한 초대형 드릴로 주인공들이 낙하하는 장면들은 절로 긴장될 만큼 짜릿하게 실감 난다. 두 시간 동안 오로지 화면과 사운드에 몰두할 수 있고 극장 나서면서 갸웃거릴 일 없는 블록버스터를 오랜만에 만났다.

▶전문가 별점

― 이상용·영화평론가 ★★★★

근래에 보기 드문 SF의 위력, 스타 트렉 팬들에게는 또 다른 왕의 귀환.

― 황희연·영화 칼럼니스트 ★★★★

시리즈가 시리즈 팬이 아닌 사람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모범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