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 농촌초등학교에 13명의 김홍도 떴다

"이 작품은 5학년 승혜 누나가 그린 거예요. 색깔 좀 봐요. 참 예쁘죠?"

6일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대안공간 눈 갤러리. 오후 2시, 햇볕이 따가워지자 그늘이 있는 한적한 이곳에 어린아이들이 들이닥쳤다. 김혜신(36) 교사가 '작품 설명'을 하자 아이들이 신기한 듯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봤다. 이날 방문한 초등학생은 모두 65명. 청룡초등학교 전교생이다.

주로 실험적인 신진 작가의 작품을 거는 갤러리에서 색다른 전시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청룡아이들의 화성나들이'. 화성시 비봉면의 청룡초등학교 미술 특성화반 '김홍도반' 학생 13명이 지난 1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림은 이들의 일상을 반영했다. 최도선(12·6학년)양의 '엄마 밭에 갔다 오시면'은 밀짚 바구니에 담긴 오이, 파, 피망 등을 정밀한 소묘로 담아냈다. 백승혜(11·5학년)양의 '봄날의 고궁나들이', 이슬(12·6학년)양의 '낙안읍성에서' 역시 안정적인 구도와 색감이 인상적이다.

갤러리 이윤숙 대표는 "이 아이들이 불과 1년 전부터 그림을 배운 걸 알면 관람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며 웃었다. 한때 폐교 위기를 겪었던 전교생 65명의 작은 농촌 초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교사의 열정이 만든 '미술교실'

청룡초등학교는 작다. 아침마다 전교생 65명을 곳곳에서 통학버스로 데려온다. 학교 주변엔 흔한 문구점도, PC방도 없다. 사계절을 알리는 풀꽃과 나무, 땀 흘리며 농사 짓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주변 풍경의 전부다.

이처럼 전형적인 시골 학교인 청룡초에 '미술 바람'이 분 것은 김혜신 교사가 부임하면서부터. 10여년간 수원 시내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김 교사는 "다른 반보다 시험을 더 잘 봐야 한다는 경쟁심리에 내 인생이 건조해지는 것 같다"며 자원, 2007년 3월 청룡초에 부임했다.

1년간 아이들과 친해지는 과정을 거친 그는 작년 '신사임당반'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그림 속에 녹아들면 참 신나는 미술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반을 통해 청룡초 전교생은 한달에 한번 담임 선생님과 함께 전통 미술공부를 하게 됐다.

김 교사는 더 나아가 이론교육과 실습을 통해 13명의 4~6학년 학생을 선발, 미술 특화반인 '김홍도반'도 만들었다. 매주 월·수·금 세 차례 여섯 시간 이상 미술을 가르치는 강행군을 도맡았다.

그는 또 인맥을 총동원해 지옥진 한국화가를 섭외했다. 한국화를 보다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지 화가의 지도 아래 아이들의 상상력이 화선지 위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직접 천연염색한 한지 위에 먹으로 꽃을 그렸다. 종이를 오려 붙여가며 한지공예를 했고 때론 흙을 주무르며 도자기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놀토'마다 용주사, 화성행궁, 융건릉, 서울 경복궁 등으로 현장체험을 나갔다. 모두 김 교사가 계획을 세운 곳들이었다. 그는 화성문화원장을 직접 찾아가 협약을 맺고 문화해설자를 무료로 초청했다. 이 현장체험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에 표현력이 덧붙었다.

◆작년 미술분야상 10개 받아

토요일에도 일하며 아이들의 미술교육에 쏟아 부은 김 교사의 열정은 학교의 분위기를 바꿨다. 2007년까지만 해도 미술 관련 수상 경력이 없던 청룡초는 작년 화성교육청이 주관하는 학생 예능대회 미술부문 5개 분야 중 4개 분야를 석권하는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10여개의 상을 받았다.

그러나 김 교사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가 여기 있는 한 열심히 하겠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해요. 그 전에 기반을 잘 만들어서 제가 떠난 후에도 전통미술 하면 청룡초가 떠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