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영남의 산 | 거류산 | 경남 고성

고성읍내로 들어서기 전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쪽 들판 너머로 삼각뿔처럼 우뚝 솟은 산이 거류산(巨流山)이다. 고성벌판과 당동만, 당항만으로 둘러싸인 고성군의 명산으로 흔히 이 산을 일컬어 고성의 마터호른(Materhorn)이라 부른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삼각형으로 솟은 모양이 유럽 알프스의 마터호른(4,477m)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고성은 낙남정맥이 지나는 중간에 위치한다. 고성읍 서북쪽 대곡산(542.9m)에서 갈라진 곁가지 한 줄기가 읍내 남산을 거쳐 벽방산(650.3m)으로 맥을 잇는다. 이 산릉은 통영지맥으로 벽방산에서 천개산을 거쳐 계속 남진하다가 통영시내 서쪽의 천암산(257.9m)을 지나 인평동 갈목마을 앞바다에서 그 맥을 다한다.

산이 걸어간다느니, 섬이 떠내려간다, 바위가 걸어간다는 등등의 설화는 다른 지방에서도 간혹 전해지고 있다. 학자들은 이런 유동(流動)관념을 인간의 자연에 대한 신비관념으로 보고 있다. 산(섬, 바위)을 신적 존재로 관념하고 신비한 것으로 보았으며 이는 산악 숭배사상, 암석 신앙, 산신 사상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산은 등산로가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지만 부산 경남의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대전권의 산꾼들도 심심찮게 이 산을 찾고 있다.

산행은 감서리 감동마을에서 거류산을 올려다보며 시작한다. 감동마을 표석이 있는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서면 길은 오른편으로 꺾어진다. 민가 사이의 고샅길을 빠져나와 산자락을 보면 감동소류지 둑 아래에 등산로안내판이 보인다. 도로에서 여기까지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소로가 이어지는데 20여 분이면 닿는다.

이 통영지맥이 지나는 주산인 벽방산에서 다시 북동쪽으로 짧지 않은 산릉이 뻗어간다. 거류면을 거쳐 동해면으로 연결되는 이 산릉에 첫 번째 솟구친 산이 거류산이다. 이 산은 경상남도 여지집성(與誌集成) 고성현읍지(固城縣邑誌)편에 유민산(流民山)으로 나온다. ‘현의 동쪽 15리에 있으며 벽산(벽방산)에서 왔다(流民山 在縣東十五里 自碧山來)’라고 돼 있다.

또 당동의 지명유래에 옥녀봉(玉女峰)과 중봉(中峰), 필봉(筆峰)이라는 지명이 언급되는 바 옥녀봉은 거류산, 필봉은 문암산, 중봉은 두 산 가운데의 484m봉을 일컫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데 등산안내판 거류산 지명변천사에는 ‘소가야:태조산→조선초:거리산(去吏山)→조선말:거류산(巨流山)’으로 표기돼 있다.

한편 방정맞은 여인 때문에 산이 서버렸다는 웃지 못할 지명유래담이 전해진다. 한 여인이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무심히 밖을 보니 산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자 멈춰 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걸어가는 산(걷다+산=걸어산)이 거류산으로 변화됐다고 한다.

이정표(거류산 정상 2.8km, 엄홍길전시관 7.1km)가 안내하는 오리나무숲 속으로 완만하게 오르는 산길이 적적하기만 하다. 15분쯤 뒤 양지바른 길가의 묘지를 지나 곧장 올려치면 당동만과 당항만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되는 전망바위에 이르게 된다.

건너편의 구절산을 중심으로 왼편이 당항만, 오른편이 당동만이다. 당항만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첩지다. 푸른 물결 너머로 당항포가, 뒤편으로는 적석산·인성산이 보이고 낙남정맥을 이루는 여항산·서북산·무학산 등의 산봉우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간다.

동해면과 거류면 사이의 당동만은 호수처럼 잠잠하다. 최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승첩지 중의 한 곳인 적진포가 이곳 일대라는 향토사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적진포해전은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연합함대가 왜선 13척을 격파하면서 일방적으로 승리한 해전이다. 쪽빛의 바다에는 고깃배가 오가고 그 너머로 가덕도를 비롯해 거제도 일대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전망바위에서 발걸음을 돌려 오른편으로 살짝 돌면 피라미드 형태의 상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등산안내도가 있는 바위를 넘어 짧은 암릉이 나타난다. 다복솔과 어우러진 암릉길은 때때로 주변 조망을 즐길 수 있어 제법 쏠쏠한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잠시 후 깎아지른 절벽의 암봉을 두고 오른편으로 돌다가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 길로 오르면 전설이 있는 거북바위다. 전망이 좋은 거북의 등을 타고 철계단을 내려서면 안부에 이른다.

우회길과 만난는 안부에서 경사가 심한 비탈길로 10분이면 정상에 선다. 상봉은 바위로 이뤄진 전망대다. 한마디로 일망무제다. 사방이 툭 트여 산과 바다와 넓은 들판이 어우러진 주변을 조망하기에 거침이 없다. 발 아래로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뻗어 있고 잘 정리된 고성 들녘 너머로 읍내가 바라뵌다. 멀리 지리산에서부터 가깝게는 벽방산까지 고성, 마산, 함안, 사천, 산청, 합천, 의령의 산은 물론이고, 거제, 통영의 섬에 솟은 산까지 희미하게나마 바라볼 수 있다.

하산은 남쪽 능선을 따라 급경사 길로 내려선다. 잠시 후면 길 왼편의 능선을 따라 옛성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아래쪽에는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세월의 무게에 허물어진 거류산성(경남문화재자료 제90호)은 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을 돌로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소가야시대의 성이라고 한다.

성터에서 5분 정도면 갈림길인 당동고개에 닿는다. 이정표(당동 2.2km, 휴게소 1.9km)가 서 있고 나무벤치가 놓여 있는 쉼터다. 이곳에는 거류면 형제산악회에서 세운 ‘거류산의 유래’라는 안내판이 있다. 내용을 읽어보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도 있을 뿐 아니라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다. 역사는 정확하게 고증되어야 하고 안내문은 오류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하겠다. 또 ‘거류산성’의 안내문에도 문제가 많다. ‘소가야의 시조가 탄생했다 하여 태조산으로 불렸다’는 부분과 ‘고성읍의 진산(鎭山)’ 운운 등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성의 진산을 무량산(無量山ㆍ581.4m)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성의 진산과 고성읍의 진산이 다르다는 뜻인가? 거류산 정상의 표석 뒷면에 새겨진 ‘고성군민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는 무량산 표석에 새겨진 ‘고성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와 무엇이 다른가? 고성군민과 고성인? 역시 아리송할 뿐이다.

당동 쪽의 길을 버리고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직진 길로 오른다. 10분이면 484m봉을 올라선다. 이제부터 한동안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따라가는 송림길이다. 20분이 지날 무렵, 부드럽던 능선길이 암릉으로 바뀌면서 주변 조망도 즐길 수 있다. 뒤돌아보면 거류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쪽으로 뻗은 능선상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거북바위의 형상은 흡사 산정을 향해 기어오르는 거북의 모습을 어찌 그렇게도 빼어 닮았는지.

5분 가량 더 나아가면 이정표상의 휴게소라는 쉼터에 이른다. 등산안내판이 서 있고 주변에 벤치 서너 개가 있는 이 봉우리는 5만분의 1 지형도에 표기된 문암산(469.8m)이다. 여기서 발걸음을 옮기자 이내 삼각점을 지나치게 된다. 보기 좋은 소나무 사이로 암릉이 이어지지만 위험한 곳에는 철계단을 설치해 놓아 아무런 부담이 없다. 거류산은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고 이정표도 곳곳에 설치해두어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잇달아 계속되는 철계단과 짧은 철다리를 지나 내려선다. 건너편에는 벽방산이 속살까지 드러내며 걸출하게 솟아 있다. 차츰 고도가 낮아지면서 짙은 소나무 숲속으로 경사가 가파르다. 내리막길이 다할 무렵이면 장의사 갈림길이 나오고 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 오른편 엄홍길전시관으로 내려서면서 산행은 끝나게 된다.

2007년 10월에 개관한 엄홍길전시관은 고성 출신으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6개를 오른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씨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전시관에는 엄씨가 등정했던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의 사진과 텐트, 산소마스크 등 원정 당시 사용했던 각종 장비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바로 맞은편 도로가 월재이고 근처 마을이 월치(티)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산행길잡이

○감동마을~감동 소류지~거북바위~정상~당동고개~문암산~엄홍길전시관~월치 <3시간30분 소요>
○월치~엄홍길전시관~문암산~당동고개~정상~거북바위~당동 소류지~당동 <3시간30분 소요>
○감동마을~감동 소류지~거북바위~정상~당동고개~당동 <2시간30분 소요>

교통

부산·마산·진주는 물론이고 최근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대전 등지에서 대중교통편을 이용, 고성을 찾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고성시외버스터미널(055-674-0081~2)에서 06시 35분부터 21시 3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당동행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산행 들머리인 감동마을 입구로 경유한다. 산행 날머리인 월치에서 읍내까지도 역시 군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는 고성택시(055-674-3938), 고성개인택시(055-673-5511)가 있다.
서울→고성  남부터미널(02-521-8550ARS) 1일 14회(09:30~23:00) 운행
부산→고성  서부터미널(051-322-8301~2) 20분 간격(06:10~19:40) 운행.
부산→고성  노포동 종합터미널(051-508-9966) 1시간 간격(07:40~19:30) 운행.
대전→고성  동부터미널(042-624-4451~3) 1일 14회(07:30~19:50) 운행.
진주→고성  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 20분 간격(06:00~21:00) 운행.
마산→고성  남부터미널(055-247-6395) 10분 간격(06:00~21:50) 운행.


숙식 (지역번호 055)

거류산 산행에 있어 숙식은 고성읍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편하다. 읍내에는 모텔이나 여관이 많아 숙박에 큰 어려움은 없다. 읍내에서 약간 외곽에 위치한 프린스호텔(673-7477), 스위스해수모텔(673-2929), 도이모텔(673-812), 그린모텔(674-62330) 등이 있다.
고성은 한정식이 유명하다. 1인분에 6,000~7,000원으로 읍사무소 인근의 초우한정식(672-7520), 달무리식당(672-2704), 무지개한정식(674-7758) 등이 있고, 고성읍에서 유일하게 횟집단지를 이루고 있는 수남리에는 광어생각(673-9799), 남포횟집(674-5526) 등이 유명하다.

2009 경남 고성 공룡세계엑스포

국내 최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된 고성(固城). 고성은 지금 온통 공룡 얘기로 시끌벅적하다. ‘2009 경남 고성 공룡세계엑스포’ 행사 때문이다. ‘놀라운 공룡세계 상상!’이란 주제로 3월 27일부터 6월 7일까지 73일간 고성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2006년에 이어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 행사는 회화면 당항포 관광지 주행사장과 하이면 상족암 군립공원 특별행사장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화석발굴체험, 공룡퍼즐 맞추기, 고성 문화 배우기 등 관람객들의 체험 참여 기회를 대폭 늘렸다는 점이 특징이란다.

우선 당항포 관광지 주행사장에는 모두 15개의 상설, 비상설 전시관이 설치됐다. 가장 핵심인 엑스포 주제관은 백악기 공룡 골격을 본뜬 게이트를 통해 관람객들을 공룡의 세계로 안내한다. 고화질 4D 입체영상과 공룡실물 모형으로 ‘백악기로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의 생성과정을 재현한 한반도공룡발자국 화석관, 중생대 공룡골격 화석 50점을 전시하는 중생대 공룡관, 세계 각국에서 출토된 화석과 광물 수만여 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화석관을 비롯 광물체험관도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이며 체험기회다. 특히 중생대 공룡관에서는 세계 3대 공룡박물관 중 한곳인 중국 쓰촨성(四川省) 쯔궁(自貢)시에서 발굴된 진품 공룡뼈 화석들을 직접 볼 수 있다.

특히 당항만에 위치한 당항포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대첩지로서 선조 25년(1592년)과 27년(1594년) 두 차례에 걸쳐 왜선 57척을 전멸시킨 전승지다. 충무공의 혼이 깃든 당항포 대첩지에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숭충사(崇忠祠)를 비롯해 기념관, 전승기념탑, 임진란창의공신 현충탑이 있다. 이밖에 기존에 있던 자연사박물관과 수석전시관 등도 엑스포 행사를 앞두고 새롭게 단장했다.

고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배둔행 시외버스나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회화면소재지인 배둔을 비롯해 행사장인 당항포 인근에는 식당과 모텔이 많아 숙식 해결에 어려움이 없다. 

1988년 눔부르봉(6,954m) 등반, 1998년 낙남정맥,
2001년 낙동정맥, 2002년 백두대간, 2004년 낙남정맥 완주. 1991년 부산시산악연맹 우수 산악인상 수상,
1999~2003년 석봉산악회 회장 역임.
전 부산시산악연맹 부회장. 저서 <영남알프스>


/ 글·사진 황계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