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몇 푼에 ‘아작’이 난 가정

나라 경제가 시원찮을수록 그 나라 주요 신문의 사회면에서 흔히 보는 기사들이 있다. 돈 몇 푼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패륜적 범죄 사건들 같은 것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파워가 커져서 그런지 이런 기사들은 언제부터인가 한줄 짜리 단신으로 처리될 만큼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회면 기사들 중 한 케이스가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속에 아주 자세하게 그려졌다.

회사 공금을 횡령하다 발각될 위기에 놓은 형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는 역시 딸의 양육비 등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동생 ‘행크(에단 호크)’에게 작은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그 보석상은 다름 아닌 이 형제의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다. 노부부의 작은 보석상을 터는 이 계획은 무척 간단하고 쉬워보였지만 현실은 종종 기대를 배반하는 법. 서투르게 작업하는가 싶더니 일이 꼬였고, 형제의 어머니가 사망했다.

이렇게 시작된 한 가정의 끔찍한 파멸. 그 긴박한 과정이 쪼개지고 뒤죽박죽된 시간과 시점을 재구성, 세밀하면서 급박하게 묘사됐다. 이 과정들은 그 어떤 감정 하나라도 들어갈 틈이 없이 단호하고 건조하다. 그것이 이 영화 속 가족의 매정하다 못해 패륜적인 정서가 더욱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데 일조한다.

또한 영화를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 식구들이 서로를, 아니 자신을 파멸시키는 가장 커다란 동력이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는 점이다. 자본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 누구든 더 많은 돈에 매우 강한 유혹을 느끼고 그 유혹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영화 속 파멸의 서사가 더욱 섬뜩한 것이다.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모든 행복과 가치의 기준이 돈이 되가는 시대를 꿰뚫어보는 아주 자세한 범죄 보고서이다.

5월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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