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물가게 아들, 금속 조각가 되다

    입력 : 2009.05.11 03:15 | 수정 : 2009.05.11 07:10

    수표공방(工房) 강은구씨 첫 전시

    서울시가 마련한 금속공방 입주작가로 선정된 데 이어, 도시의 아름다움을 철로 표현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는 금속조각가 강은구씨. 강씨는 청계천‘철물거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서울 중구 수표동에는 철물과 공구 가게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제강'이나 '○○상사'란 간판이 즐비한 이 동네에 '서울특별시 수표금속문화공방(工房)'이라는 특이한 문패가 눈에 띈다. 서울시가 청계천을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시각예술 창작 공간으로 만든 곳이다.

    공방 입구에는 제1기생으로 이곳에 입주해 있는 금속조각가 강은구(姜恩求·31)씨의 조각작품 〈철물점 거리의 아침〉이 놓여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평강절단'은 청계천 '철물거리'에 있던 가게 이름으로 강씨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아버지를 도와 철판을 잘랐다. 강씨는 "학교 끝나면 놀고 싶었는데 늘 아버지가 자르는 철판을 붙들고 있어야 해서 불만이었다"면서 "딴 생각하면 다치기 쉬워 늘 긴장해야 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강씨는 '누가 잘못하다 손가락이 잘렸다'는 소리에 몸을 떨었고, 철에서 나는 냄새도 싫었다.

    그러나 대학에 디자인 전공으로 입학한 후 조소로 전공을 바꾼 강씨는 대학교 2학년부터 철을 다루기 시작했고 철의 가능성에 빠져들었다. 강한 것 같으면서도 섬세하고 유연한 특성에 매력을 느꼈다. "금속 조각을 하면서 0.8㎜ 두께의 철판을 0.1㎜라도 잘못 자르면 전체 작품을 망치기 때문에 긴장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즐거운 긴장감이다. 강씨는 철판을 종이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것도 어려서부터 철과 가까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강씨는 포스코 본사 건물을 팝 업 스타일로 작업한 졸업작품 〈뷰티플 시티〉처럼 도시를 작고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있다. 철판에서 이미지를 잘라내 세운 뒤 판 뒤에 등으로 조명을 밝혀 은은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내서 차가운 느낌의 철과 도시를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강씨는 8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동숭동 샘터갤러리(02-3675-3737)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행운도 잡았다.

    어렸을 때는 강씨가 아버지를 도왔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강씨를 돕고 있다. 25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가게를 열고 있는 아버지를 통해 철판을 싸게 사는 것이다. 강씨는 "평생 힘든 일을 하시며 아들 둘을 다 대학에 보내주신 아버지가 며칠 전 공방을 둘러보시고 주변 분들께 자랑하셨다"면서 "부모님께 처음 효도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은구씨는 "공방 주변의 철물거리 자체가 갖가지 재미있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면서 "작품이 막히거나 답답할 때는 철물거리를 돌아다니면 아이디어도 떠오른다"고 말했다. 강씨와의 인터뷰가 끝날 때쯤 주변 가게에서 철 파이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