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액션!" 없는 세계 최고의 스튜디오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는 촬영 스튜디오가 없다. 오로지 놀이방 비슷한 개인 사무실들이 일렬로 복도를 채우고 있을 뿐. 촬영 세트도 없다. 애니메이션에 실감을 주려고 만든 미니어처 세트들이 있을 뿐이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월―E'를 만든 픽사가 1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업(Up)'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말 세계 각국 기자들을 초청했다. 13일 개막할 칸 국제영화제에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개막작으로 상영될 '업'은 이달 29일 미국에서, 7월 한국에서 각각 개봉될 예정이다.

픽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동쪽으로 15㎞쯤 떨어져 있는 조용한 도시다. 정문에서 100m쯤 가로수길을 걸으니 흡사 식물원 같은 모양의 2층짜리 건물에 닿았다. 이곳이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픽사 건물 내부는 온통 '업' 관련 그림과 조각들로 장식돼 있었다. 개봉을 앞두고 '월―E' 장식에서 '업'으로 바꿨다고 했다. 1층 현관 앞에는 '몬스터 주식회사' 주인공들이 안내를 하듯 서 있었고, 로비 가운데엔 영화 '업'에 나오는 파라다이스 폭포의 모형이 서 있었다. 그 주위를 수십개 풍선에 매달린 집이 떠다녔다. '업'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죠. 여러분은 지금 픽사에서 가장 중요한 방에 와 있습니다." 제작과정 설명은 스토리 창작팀부터 시작됐다. 픽사의 스토리 작가 로니 델 카르멘(del Carmen)은 "이번 영화는 특히 스토리 모델이 된 현장에 직접 가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며 "그곳의 느낌과 날씨를 애니메이션에 담기 위한 고행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스토리는 개발 회의에서부터 그림으로 표현된다. "모든 회의는 비주얼화한다"는 회사방침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픽사에선 경비원도 그림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 '업' 제작진 10명은 영화 속 파라다이스 폭포의 모델이 된 남미의 에인절 폭포를 지난 2006년 열흘간 답사했다.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가이아나의 경계에 있는 에인절 폭포는 높이 979m의 세계 최고(最高) 폭포다. 이들이 "전혀 다른 세계"라고 묘사한 이곳의 자연환경과 제작진의 경험은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관객들은 애니메이션을 볼 때 목소리 연기자에게만 박수를 보내죠. 그렇다면 대사가 없는 수많은 장면들은? 모두 애니메이터들의 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설명하던 스콧 클락(Clark)은 "나를 비롯한 픽사의 애니메이터들은 개나 자동차, 장난감 연기도 가능한 배우들"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연기는 마우스를 움직여 그래픽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는 "내 휘하의 60~70명 애니메이터에게 '배역'을 준다는 면에서 나는 캐스팅 디렉터이기도 하다"고 했다.

제작과정 설명은 각 분야 담당자들이 저마다 "우리 분야가 정말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형국이었다. 프러덕션 디자인팀은 "프러덕션 디자인이 완벽하면 영화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컴퓨터로 낡은 가구의 나뭇결을 표현하는 작업이 대표적인 예"라고 했다. 기술·특수효과팀은 "애니메이션에 '그럴듯함(believability)'을 더하는 것이 우리 작업"이라며 "캐릭터가 움직일 때마다 색깔과 명암이 정교하게 바뀌게 만드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79년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부문을 86년 스티브 잡스가 1000만달러(약 125억원)에 인수해 세운 픽사 스튜디오는 2006년 디즈니에 합병될 때 74억달러(약 9조2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상상 속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만드는 이곳의 규모도 상상만큼 불어난 셈이다.

영화 '업'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픽사 1층 시사실에 앉았다. 조명이 꺼지니 천장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다들 낮은 감탄사를 뱉는데, 천장 한구석에서 별똥별이 길게 꼬리를 빼며 날아갔다. 작고 빛나는, 픽사다운 아이디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