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홍상수가 어려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영화는 좀 찝찝해서 말이지…'라고 손사래를 쳤던 사람이라도 이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14일 개봉)를 보고 나면 한결 '보송보송한' 기분이 들 것이다.

홍상수 영화 특유의 냉소적인 시각 덕에 왠지 자신을 간파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은 비슷하게 들지만, 이전 작품에 비해 캐릭터를 구현하는 시각이 훨씬 유쾌해졌기 때문이다. '생활의 발견'이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에서 보듯, 무조건 달려들고 보는 성욕의 발산도 이전에 비해 줄었다. 테이프 늘려놓은 듯 느릿느릿한 말투로 "신고 다녀보니 맨발이 가장 편해서요"라며 맨발에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우겨 신고 다니던 그의 차림새마냥, 한결 편해진 홍 감독의 속내를 읽는 듯하다.

"다음 영화는 200만 돌파"를 내뱉는 예술영화 감독 구경남(김태우)은 제천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제천을 방문하고, 후배 부상용(공형진)을 만났다 상용의 아내 유신(정유미)과의 관계를 오해한 상용에게 괜한 행패를 당한다. 얼마 뒤 특강차 방문한 제주도에서 구경남은 대선배의 아내가 된 첫사랑 고순(고현정)과의 만남에 가슴 뜨거워진다. 인간을 뼛속까지 관찰하는 데 능한 그의 능력대로, 홍상수는 '구경남'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아첨하는 인간, 자기만 아는 인간, 젠체하는 인간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구경해 낸다. 허위 의식에 사로잡힌 지식인들을 비아냥거리던 구경남 역시 성공한 동료 감독에게 질투를 쏟아내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짝만 찾으면 인생은 만사형통"('오! 수정')은 "이 기집 저 기집 신경 쓰지 않고 한 사람만 신경 쓰면서 사랑의 금자탑을 쌓고 싶다"란 대사로, "사람이 되긴 어려워도 괴물이 되진 맙시다"('생활의 발견')라던 그 명언은 "사람이었다 동물이었다 하지 않고 쭉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재생된다.

속물 근성 가득한 것도 입맛 버리는데, 남의 일에 이리저리 간섭하기까지 하는 인간들을 향해 그는 고순의 입을 빌려 '일침'을 가한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한결 유쾌해지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관객을 '뜨끔'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변함없다. 만만찮게 보였지만 결국은 '식물성'이 강했던 여성 캐릭터가 고순을 통해 한층 주도적으로 바뀐 것도 이번 영화가 보여주는 변화다. 먼저 유혹하는 듯했으나 결론은 수동적이었던 '밤과 낮'이나 '여자는 남자는 미래다'와는 달리, 관계의 중심은 어느덧 고순에게로 넘어간 걸 발견하게 된다.

그가 지은 제목대로, 꼭 해야 할 일이 생겼다. 홍상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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