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眞景山水)'의 진수… 금강(金剛)이 깨어날 듯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오는 17일부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겸재 서거 250주년 기념 겸재화파전(謙齋畵派展)》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다.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겸재 서거 2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것으로, 한국 회화사에서 겸재의 중요성을 간파해 작품을 집중 수집해온 간송(澗松) 전형필의 혜안과 이를 받들어 40년 가깝게 겸재를 파고들었던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의 학문적 노력이 결실을 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강점은 겸재 그림이 갖는 중요성과 그의 화풍이 시기별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최 실장은 "겸재는 필선(筆線)이 강한 중국 북방화법과 묵법(墨法) 위주인 남방화법을 조화시켜 동양화법을 마무리한 인물"이라면서 "특히 주역에 능통했고 이를 구도에 적용해 중국인들도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작품 〈금강내산(金剛內山)〉같이 금강산을 그릴 때 수목이 우거진 토산(土山)은 묵법을 쓰고, 골기 서린 암산(巖山) 절벽은 필법을 사용하면서 토산이 골산(骨山·암봉)을 감싸 안는 구도를 펼쳤다는 것이다. 주역에 능했던 겸재가 그림에서 음양 대비를 보여주는 구도를 잡았다는 설명이다.

겸재는 금강산은 물론, 단양 8경 등 우리 국토의 곳곳을 직접 사생하면서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본질까지 꿰뚫어 보았다. 최 실장은 "겸재야말로 우리 산천의 중요한 요체를 뽑아 그림으로 완성한 우리 고유의 산수화 양식인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의 시조가 됐다"고 평가했다.

겸재는 금강산 그림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30대 때 그린 금강산은 선이 날카롭고 삼엄한 기운이 강했다. 그러나 70대에 그린 금강산은 뛰어난 구도와 달인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필력과 묘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축약해 표현하는 추상의 경지도 보여줬다. 작품 〈독서여가(讀書餘暇)〉는 겸재의 거의 유일한 자화상으로 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는 이번 전시와 맞춰 펴낸 〈간송문화(澗松文華)〉에서 겸재 화업에 역사적 배경을 입히고 이야기를 붙여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그중 하나는 영조가 신하인 정선을 부를 때 이름이 아닌 호로 부를 정도로 각별히 총애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어렸을 때 그림을 배운 스승이기도 했지만 우리 고유문화의 우수성을 세우는 데 앞장섰던 영조는 겸재야말로 진경산수를 확립할 인물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겸재는 30대 때 주역의 가르침을 따라 스스로 호를 겸재(謙齋)라고 지어 평생 겸손한 자로 머물렀고, 결국 종2품까지 올라 다복(多福)을 누린 사람이 됐다.

이번 전시에는 겸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를 비롯,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심사정(沈師正), 김희겸(金喜謙) 등 17명의 작품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는 31일까지이며, 겸재 작품 80여점 등 모두 100여점이 전시된다. (02)762-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