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오지의 산 ㅣ 철개산 ㅣ 강원 삼척 김부래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지만 바다가 멀게 느껴지는 오지에 솟은 산이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도 이름 없는 산. 산행 본부로 정해놓은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노곡마을에는 축구장처럼 파란 보리밭이 많다.

머리끄덩이 휘어 잡혀/ 비틀대는 보리밭이랑

이년 이 화냥년/ 봄바람에 바람 난 년

옛날 일이다 케케묵은 / 약초 캐는 민씨 여편내

개골짝 흐드러진 함박꽃 내음에

몸이 달아, 끝내/ 대처에서 온 젊은 거간꾼과/ 육덕 좋은 배 맞추다 달아났다

당귀 쌓아둔 고방문 열어 둔 채

없다. 이제는 어디에도/ 그런 보리밭

봄이 가고 봄이 와도/ 길고 긴 신밭골/ 외톨이 뻐꾸기 울음만.

백두대간 시인 권경업씨가 홍청매 흐드러진 섬진강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회남재를 걸어 넘으며 옛날 옛날 내게 들려준 ‘보리밭’ 시율이 봄바람에 오늘에서야 내 귓가에 앉았다.

친구 이재학(블랙야크 삼척점)씨, 삼척여성산악회 정선자ㆍ김순자씨, 태백여성산악회 권영희 회장, 안순란 총무와 노곡 고자리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마을 남쪽에 있는 월산천이 여기에 와서 땅속으로 들어가므로 들네골(入古洞)이라 했으나 그 후 이름이 좋지 않아 고자리(高自里)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마을회관 앞에는 마을이름을 새긴 표석, 팔각정, 버스승강장(상반천리↔고자리↔하월산리)이 있고, 현재도 물이 복류하는 월산천(月山川)과 424번 지방도가 나란히 동ㆍ서를 잇고 있다. 북북동 방향의 칠재골로 든다. 입구에서 볼 때마다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니 마을이 제법 크다.

1910년경에는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었으나 서촌 노곡으로 이전했다. 우사를 뒤로 하니 마을집들이 없다. 칠재골이라 하는 골짜기에는 옻나무보다 칡덩굴이 유난히 많고 뼝대 돌틈에는 말벌집도 보인다.

고자리 마을에서 1.5km쯤에 삼거리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길이 끝나며 폐가 2채와 인적이 느껴오는 농가 1채가 있다. 양지 바른 언덕에 앉아 있는 칠재부락이다.

폐가 옆을 지나 계곡으로 드니 오래된 산판길 비슷한데 억새와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고, 밤나무 한 그루가 섰다. 여기서 왼쪽 계곡으로 간다. 길은 없다. 당재 방향으로 올려다 뵈는 능선으로 붙는다. 잡목을 헤집는 된비알이다. 등줄기가 달아오르고 얼굴에선 소금물이 떨어진다. 웃통을 한 허물 벗는다.

필자가 “이런 길로 안내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자 “아니오. 이런 곳이 더 좋은데요” 하며 아줌마들이 힘을 돋워준다. 된비알에 엉거주춤 서서 안순란씨가 건네는 삶은 찰강냉이로 휴식을 취한 후 헐레벌떡 15분쯤 올라가니 당재능선이다. 마을에서 산불감시를 하던 아줌마는 ‘토막메기’라 했는데….

오른편 능선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니 온통 두릅나무 지천이다. 모두 오래 묵은 ‘자연산’이다. 가시 세운 두릅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 오르자 바위에 뿌리를 박고 선 나무들이 반긴다. 반들거리는 껍질의 소사나무와 노송이 어울려 자연공원을 연상케 한다. 신비하고 아름답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신의 작품 같은 공원이 한동안 펼쳐진다.

다시 가시덤불을 지나 올라서니 정상이다. 주위의 나무들을 제거하여 쑥대밭이 된 정상, 깨어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이 있는 철개산(563.4m) 정상임을 알린다. 북동쪽 아래의 초당저수지와 근덕항의 봉긋 튄 덕봉산, 그리고 동해가 시선을 잡는다.

들입재 방향의 남남동 능선을 따라 하산한다. 이 능선은 낙동정맥의 백병산(1259.3m)에서 갈래친 지맥이다. 산초나무, 산딸기나무, 두릅나무 같은 관목이 빼곡한 정상부를 빠져 나가니 소사나무, 굴참나무들이 석회석 바위들과 어우러진 능선이다. 다시 경치가 바뀌었다. 오른쪽은 멋쟁이 금강송이 줄을 이었고 왼편으로는 잡목투성이 방화선 아래로 바다가 보인다.

참빗살처럼 촘촘한 싸리나무 군락도 헤쳐보며 굴참나무 주종을 이루는 능선을 고도를 낮추며 1시간10분쯤 능선을 따라 들입재 1km쯤 전에서 주릉을 버리고 오른편의 골올미계곡으로 내려선다.

길 없는 사면, 낙엽에 헛발 짚고 나뒹굴기도 여러 번…. 20여 분을 그렇게 내려서니 인동초가 많은 골올미계곡이다. 계곡에도 길은 없다. 청가시덩굴 엉킨 바위들을 넘고 또 넘으며 30여 분을 즐기자 산판길이 나타난다.

질척거리는 산판길로 7분여 계곡을 빠져나오니 앞에는 삿갓봉(688.2m), 뒤로는 안개산, 파란 보리밭이 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골올미마을이다.

산행길잡이
고자리마을 -(35분)- 칠재골마을 -(1시간25분)- 정상 -(2시간)- 골올미마을

교통
삼척버스터미널(033-572-2085)에서 32번 노선버스(삼척~미로~천기리~고자리~노곡면사무소~둔달리행)를 타면 된다. 1일 4회(고자리 기준 06:00, 07:40,14:30,18:00) 운행.

숙식 (지역번호 033)
노곡면사무소 앞에 월송식당(572-0255), 한가네한식(572-7907)이 있으며 숙박은 노곡 김원근 이장(010-2985-7984)에게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