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과 핑크색으로 봄을 선물하고 싶어"

유리창 건너 오밀조밀 봄이 피어오른다. 동화 속 한 장면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녹색과 핑크를 입은 성(城)이 곡면 위로 펼쳐진다. 성의 하수구에는 오수 대신 오색 보석이 흘러나오고, 선명한 붉은 나무 두 그루가 성의 입구를 지킨다.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복합공간 C스퀘어의 인터뷰갤러리 원(one)에서 5월 한 달 동안 전시되는 작가 박은선(47)씨의 작품 '두 그루의 붉은 나무가 있는 성(castle)'. 11일 만난 작가 박씨는 "신록의 녹색과 진달래의 핑크빛으로 도시인들에게 '봄의 성'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검은색 테이프를 붙여 2차원 평면을 마치 3차원 공간처럼 보이게 하는 박씨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곡면을 만나 입체감을 더했다. 정교하게 검은 테이프로 일일이 이어 붙인 성의 내부는 움푹 들어간 듯한 착시효과를 준다. 때로 날카로운 예각으로 공간을 구획하지만, 그 선들의 조합은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를 아우른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직선(直線)으로 이뤄진 공간이에요. 성냥갑 빌딩, 직선 차로…. 그 직선의 공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균일하고 명확한 검정 테이프가 안성맞춤이었어요." 그녀가 부드러운 연필 대신 검은 테이프로 그림을 그린 이유다.

작품의 생명줄을 공간에 잇는 설치작가로서 박씨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언론사 앞이라는 전시 공간의 특수성. "언어를 다루는 언론사가 인간이 배출해낸 오물을 보석으로 바꾸는 필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성의 하수구에서 검은 오물 대신 보석이 쏟아지게 그렸어요." 갤러리의 옆 유리를 통해 보면 필터에 남은 찌꺼기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한글 조각이 보인다.

작품 안에는 거울을 단 2개의 창문이 숨어 있다. "바깥 현실을 내부에 투영하고 싶어 손바닥만한 거울 2개를 달았어요. 숨은 그림 찾듯 한번 찾아보세요. 바깥 풍경이 작품의 일부가 된 풍경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