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선택] 나보다 어린 아버지를 구하라? 스토리 허점 덮는 그래픽의 향연

올해 62세인 미국 정치인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벌거벗고 술집에 들어가 옷이며 신발을 강탈하던 원조 터미네이터였을 때 37세였다. 1984년이었다는 말이다. 그때 이 영화가 핵전쟁으로 인류 멸망을 예고한 연도가 2003년, 기계 악당들이 터미네이터를 타임머신에 태워 보내는 연도가 2029년이다.

그리고 2009년 5월 21일 네번째 시리즈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 개봉한다. 새 영화는 기계가 인간을 장악한 연도를 2018년으로 잡고 있는데, 강원도는 그 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열고자 하니 이 영화는 1984년부터 줄곧 미래가 무척 빨리 암울해질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터미네이터에 터미네이트(terminate)될까봐 다른 영화들이 같은 개봉일을 피했는지 이번 주말 추천할 영화 선택의 폭이 무척 좁다.

인류가 개발한 군사방위 프로그램 '스카이넷'은 인류를 역공격한다. 이 전쟁 후에도 기계들과 인간 저항군의 전쟁은 계속된다. '스카이넷'은 인류의 씨를 말리려고 터미네이터 군단을 만든다. 인간 저항군의 리더인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는 스카이넷에 잠입하지만 동료들을 잃고 마커스(샘 워싱턴)를 만난다. 코너는 마커스로부터 카일 리스(안톤 옐친)의 행방에 대해 듣는다. 카일 리스는 현재 10대 후반의 어린 병사이지만, 훗날 코너의 어머니를 지키려고 과거로 보내졌다가 코너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다. 코너는 카일 리스를 구하려고 나선다.

이 영화는 이제 스스로 옭은 줄이 엉키고 뭉쳐 감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줄거리는 이제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나를 낳을 어머니를 구하려고 미래에서 온 사람이 나의 아버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발전시키다 보니 '그 아버지가 10대일 때 아들은 이미 30대'라는 참으로 머쓱한 스토리가 된 것이다.

터미네이터 네번째 시리즈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에 실패하면서 온갖 특수효과와 변종 터미네이터의 박람회가 돼버렸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두 시간을 나쁘지 않게 보내는 수단이다. 그러나 트랜스포머처럼 정신없는 액션이 휘황할 때 '그러니까 아버지가 먼 미래로부터 과거로 와서 아들을 낳았는데 현재엔 아들보다 나이가 적고, 그 아들이 아버지를 구해야 자신이 태어날 수 있는…'식으로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관객에겐 골치 아픈 두 시간일 수도 있다.

영화는 시종 어둡고 음침한 이미지다. 기막힌 컴퓨터그래픽 장면도 어두운 색조에 묻히는 느낌. 그래도 터미네이터 팬들은 전투헬기형 터미네이터, 물뱀형 터미네이터들에 환호할 만하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25년 만에 벌거벗고 깜짝 등장해 깜짝 놀라게 한다. 100% 컴퓨터로 만든 영상이라고 한다.

▶전문가 별점

시리즈의 기본에 충실한 기계와의 끝나지 않는 전쟁.

― 이상용·영화평론가 ★★★☆

욕하기도 뭐하고 안 하기도 뭐하고. 딱 프랜차이즈 영화다운 맛.

― 황희연·영화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