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엔 '박쥐' '마더'뿐?… '잘 알지도 못하면서'

18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한국영화의 밤' 행사엔 많은 영화인이 모여들었다. 이들의 주된 화두는 역시 '박쥐'와 '마더'였다. 그러나 올해 칸에는 한국영화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여럿 진출했다. 사람들의 화제는 한국영화의 다양성으로 자연스레 옮아갔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 프로그래머인 제레미 세게이는 "올해 한국영화는 정말로 다양하다"고 말했다. 감독주간에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먼지아이'가 초청받았다. '비평가 주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 중인 문성혁 감독의 '6시간'이 진출했다.

홍상수의 신작은 제천과 제주를 오가며 펼쳐지는 반복적인 연애담이다. 이는 홍 감독의 전작들보다 훨씬 친근하고 여유로워졌다. 주인공 구경남(김태우)의 엉뚱한 행동은 프랑스인들에게도 통하는 모양이다. 칸 상영장에서는 자주 웃음이 터져 나왔다.

'6시간'은 택시 운전을 하는 선우(김태훈)와 택시 승객인 여성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다. 세란(김효주)은 '애인대행'일을 하고 있다. 영화 제목인 '6시간'은 세란이 한 남자와 약속한 '애인대행' 시간이다. 이들의 풍경은 화려한 도심의 네온사인과 대비를 이루면서 황량한 현대인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애인 흉내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세란과 수많은 사람을 실어나르는 선우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닮은꼴이다. 문성혁 감독은 "현지 관계자들이 이 영화의 구조를 독특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쥐'와 '마더'가 극단적인 상황을 통한 파토스(pathos·격정)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면, 감독주간과 비평가 주간에 소개된 작품들은 일상을 건드리면서 반복되는 삶의 미묘한 공기를 잡아낸다. 이것은 최근 한국영화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일 것이다.

노경태 감독의 '허수아비들의 땅' 역시 칸 초반에 소개된 작품이다. 현지에서 만난 노 감독은 "내 영화가 프랑스의 극장 10곳 정도에서 상영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다.

올해 칸에서 소개되는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독특한 작품 중 하나는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되는 한국계 여성감독 우니 르콩트(43)의 '여행자'이다.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한·프랑스 합작영화다.

아홉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우니 르콩트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영화로 옮겼다. 그는 1975년 한국의 고아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이런 내용은 김소영 감독의 '나무없는 산'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 감독 역시 입양의 경험을 지니고 있다. '여행자'에는 '괴물'에 출연했던 고아성과 한국 아역 배우들이 등장한다. 영화 속 진희 역을 맡은 아역 배우 김새론은 일찌감치 칸에 온 행운을 누린 탓인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영화 속 진희도 그랬다. 소녀는 아버지(설경구)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오게 된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며 저항하다 결국 비행기에 오르는 순응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두 편의 단편영화가 '시네 파운데이션'을 통해 소개된다. 올해 칸에서 '박쥐'와 '마더'가 화려한 스케일로 한국영화의 최전선을 보여주었다면, 중반 이후 소개되는 영화들은 한국 영화계 새로운 세대를 보여주는 예고편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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