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도발적 영화들, 칸을 홀리다

24일(현지시각) 폐막한 제62회 칸 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에 문을 활짝 열었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으면서 아시아의 대표적 감독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유혈 낭자한 작품들이 유독 많았던 올해 경쟁부문에서 칸은 유럽 거장의 신작에 최고상을 주면서 논란을 피해갔다.

◆칸 주목받은 아시아 영화

올해 칸 경쟁부문 진출작 20편 중 아시아 영화는 6편이나 됐다. 작년(3편)에 비해 두 배 늘어난 숫자다. 이들 작품 중 3편이 본상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비롯, 필리핀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키너테이(Kinatay)'가 감독상을, 중국 루 예 감독의 '스프링 피버'가 각본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아시아 영화가 6편이나 포함된 것은 세계 영화계의 판도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칸 영화제는 최근 조금씩 아시아에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에 이어 두 번째 출품한 '박쥐' 또한 수상함으로써 칸의 특별한 애정을 확인했다. 부산영화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올해 칸은 아시아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확실히 보여줬다"며 "특히 허우샤오시엔과 지아장커 등 중국계 감독에 이어 새롭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주자로서 박찬욱 감독의 위상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상을 받은 아시아 영화들은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에 영화제 내내 논란의 대상이었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가 남의 아내를 탐한다는 내용과 표현의 방식 때문에 '박쥐'가 논란을 일으켰고, '키너테이'는 매춘부를 잔혹하게 토막살해하는 장면 등으로 호오(好惡)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AFP는 수상 결과를 두고 "아시아의 음울하고 불편한 영화들이 칸의 선택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최고 영예는 유럽 영화에

올해 칸에는 황금종려상 수상 경력을 가진 감독의 작품만 4개가 초청될 만큼 거장들이 총출동했다. 칸 경쟁부문에 처음 초청되는 감독이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칸은 '피아니스트'(2001·심사위원대상)와 '히든'(2005·감독상)으로 이미 두 차례나 본상을 받았던 오스트리아 출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에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프랑스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가 받아 유럽 영화가 1·2위를 차지했다. '하얀 리본'은 1차 대전 직전 독일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파시즘을 흑백필름에 담은 영화이고 '예언자'는 단순 폭력으로 수감된 아랍계 청년이 거물 마약상으로 변하는 과정을 담았다.

한편 미국 영화 중 수상작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의 크리스토프 월츠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 유일했다. 이에 따라 올해 칸은 이변과 논란을 의도적으로 피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 영화 저력 확인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계는 올해 칸 영화제가 청신호로 작용하길 기대하고 있다. '박쥐'가 수상하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호평받는가 하면, 최다 한국 영화(10개)가 진출했으며 씨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는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이 3등상을 받았다. 이로써 한국 영화의 튼튼한 기반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올 들어 '과속스캔들'(800만명), '7급공무원'(350만명), '박쥐'(210만명) 등 한국 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워낭소리'와 '똥파리' 등 독립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것도 영화계의 기대감을 키운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2000년대 들어 한국 영화는 세계화 노력을 계속해 왔으며 '박쥐'도 할리우드 투자를 받은 작품"이라며 "한국 영화가 칸에서 작품상을 받음으로써 그 파워를 재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칸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인정받은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아시아문화기술투자 유인택 대표는 "국내에서 양극단의 평가를 받은 '박쥐'가 칸에서 수상한 것은 한국 영화의 문화적 측면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앞으로 예술지향적 영화들도 투자유치가 좀 더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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