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선봉장' 킥스 개막전 웃었다

이창호는 개인주의자? 국내 단체전에서 지금까지 거둔 성적을 보면 그런 비아냥이 나올 만도 했다. 각종 기전서 펄펄 날다가도 바둑리그만 나가면 딴 사람이 된 듯 부진의 늪을 헤매왔기 때문. 2007년 9승 4패로 체면치레에 그치더니 작년엔 5승 8패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고, 그 여파로 소속팀 킥스도 최하위인 8위로 추락했다.

절치부심. 킥스는 올 들어 멤버를 몽땅 물갈이하면서 오직 이창호 1명만을 재호명했다. 물론 이번에도 주장 순번으로 예우를 갖췄다. 마침내 21일 티브로드와의 개막전. 오더(대진순서)가 공개된 순간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팀 내 최고참인 이창호가 5판 중 가장 고생스런 장고(長考)바둑에 기용됐기 때문이었다.

킥스의 출발은 산뜻했다. 박정환과 홍민표의 연승으로 2대0으로 앞서나갔다. 남은 세 판 중 1승만 보태면 되는 상황. 이창호가 '반집의 마술사' 안조영과 마주 앉았다. 한창 중반전을 치르는데 옆에서 벌어지던 3국이 끝났다. 팀 동료인 고근태가 최명훈에게 패해 2대1. 19세의 팀 막내 박시열도 상대팀 주장 목진석에게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창호는 미동도 않고 '돌부처' 모드로 승리를 다져갔다. 흑 불계승. 박시열은 어느새 고개를 떨군 모습이었다.

'작년 꼴찌' 킥스가 KB국민은행 2009한국바둑리그 개막전을 3대2 승리로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국 후 인터뷰에서 이창호는 "오더는 전적으로 감독님의 영역"이라며 장고대국에 기용된 사연을 밝혔다. "올해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각오로 뛰겠다"고도 했다. 양재호 감독은 "쫓기고 있어도 이창호 九단이 있어 역전패는 상상도 안 했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23, 24일 대국에선 창단 팀 바투가 '터줏대감' 한게임과 역전 재역전의 드라마 끝에 3대2로 이겨 서전을 장식했다. 바투는 1대2로 뒤진 상태에서 백홍석, 박승화가 나란히 불리한 바둑을 뒤집고 김주호, 이영구를 꺾어 극적인 1승을 안았다. 대국 후 백홍석은 "상대가 막판 10번 정도 후퇴 또는 실수를 했다. 그 중 한 번이라도 제대로 두어왔더라면 내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편 24일 대구 영남이공대 천마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올 시즌 첫 지방투어 대국에선 홈팀 영남일보의 강유택이 하이트진로 팀 조훈현을 흑 불계로 제압, 팀의 기선 제압에 한몫을 했다. 올해부터 지방투어는 팬 투표에서 가장 관심 있는 대국으로 선정된 한 판만을 현장에서 치르게 된다.

이날 대구 지방투어는 제1회 대구시장배 전국대회와 함께 열려 축제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바둑리그 최초의 3연패(連覇)에 도전하는 영남일보와 신생 하이트진로 간의 나머지 네 판은 오는 28, 29일 한국기원서 벌어질 예정. 또 30, 31일엔 나란히 서전을 장식한 킥스와 바투가 2연승 자리를 놓고 격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