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간 '키워낸' 키티, 나에겐 연예인 같은 존재"

분홍색 리본을 귀에 단 하얀 새끼고양이 '헬로키티'는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선 '문화 아이콘'이다. 1974년 탄생한 이래 60여개국에서 5만종에 이르는 키티 제품이 판매됐고, '키덜트(아이들의 감성을 가진 어른)' 문화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디자이너 안나 수이, 화장품브랜드 맥(MAC) 등 유명 아티스트와 브랜드에서 키티를 모티브로 한정판을 만들어 활동 반경이 팬시에서 '예술'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지금은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캐릭터지만 한때 키티는 사장 직전의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키티를 만든 일본의 캐릭터회사 산리오사(社)는 키티가 출시된 뒤 전혀 인기를 끌지 못하자 1980년 키티 캐릭터 사업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 회사측은 마지막 카드로 사내 디자이너들에게 키티를 이용해 잡지 커버를 만들어보라고 주문했고, 이때 '피아노 치는 키티'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키티는 극적으로 부활했다.

'피아노 치는 키티'를 만들어 키티를 벼랑 끝에서 되살린 주인공은 현재 산리오 수석디자이너인 야마구치 유코(山口裕子)씨. 그녀는 시미즈 유코·요네쿠보 세츠코에 이어 1980년부터 29년간 '3대 키티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키티를 낳은 엄마'는 아니지만 '키티를 성공시킨 엄마'인 셈이다.

23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야마구치씨는 마치 코스프레(만화 속 캐릭터를 흉내 내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양 갈래로 묶은 염색 머리, 장미꽃 장식이 달린 초록색 구슬 목걸이를 하고 등장했다.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과 패션.

"한국 신문에는 나이를 표기한다"고 넌지시 나이를 물었다. "일본 신문도 마찬가지지만 나이를 말한 적이 없어요. 키티가 태어난 지 35년 됐지만 키티에게 나이가 의미 없듯 내 나이도 키티와 함께 머물고 있어요." 핑크색 비즈가 가득한 휴대폰과 토끼 모양 핸드백이 옆에서 반짝거렸다.

"처음 키티 디자이너를 맡으란 얘기를 들었을 때 '뭔가 단단히 잘못 엮였구나' 싶었어요. 당시 키티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거든요." 키티를 살려내기 위해 생각해낸 그녀의 묘안은 길거리 사인회. 정성스레 키티를 그려 나눠 주고 '키티짱 잘 봐주세요'라고 쓴 전단을 일일이 돌렸다. 아이들의 캐릭터로 시작한 키티는 어느새 어른들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꼬마 때 키티를 보고 자란 여고생이 '고등학생에 맞는 키티'를 만들어달라고 팬레터를 보냈더군요. 흑백 키티, 생활용품, 옷 등 여러 연령과 상황에 맞춰 키티 상품을 만들었어요." 그녀는 "캐릭터가 같은 얼굴로만 있으면 사장될 수밖에 없다"며 "시대에 맞춰 변화시켜 항상 '패셔너블하다'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녀에게 키티는 어떤 존재일까. "처음엔 '친구'였고, 그다음은 '분신' 같았어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히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대신 보내고 싶고…. 지금은 사무실에서 키우는 '연예인' 같아요." 그녀는 "키티가 NHK 홍백전(연말 일본 최고 인기 연예인이 서는 무대)에 서는 게 꿈"이라고 했다.

문득 그녀의 집엔 몇 개의 키티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하나도 없어요. 키티가 있으면 집이 업무의 연장선이 될 것 같아서요(웃음)." 그녀로 인해 되살아나 '세계적인 스타'가 된 키티는 오는 6월 28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인사이드 키티전'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