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빈의 미소에선 현실을 잊게 해주는 풀향기가 난다.' 2004년 발간된 '한국영화 배우사전'(스크린)에서 원빈을 소개한 글의 첫문장이다. 한국 여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 중 한명인 원빈.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영화 '마더'로 돌아왔다. 역대 출연작 중 그의 '풀향기'를 가장 잘 살린 배역이다. 5년만의 컴백작에서 원빈은 아들 윤도준 역을 맡았다. 순진무구 천진난만 바보 청년이다. 뺑소니를 당해도 화낼 줄 모른다. 평생 손해만 보고 살 팔자다. 어머니(김혜자)는 그런 아들이 늘 불안하다. '잘생긴 배우가 바보 연기를 하면 감정이입이 잘 될까'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기우였다. 걸음걸이, 어벙한 말투 하나하나가 자연스럽다. |
| 5년만의 컴백작…'천재' 봉준호 감독 믿고 본능적 연기 |
| 연기에 세월 반영…끝 안보이는 게 배우의 매력 아닐까 |
(바보 연기가 쉽진 않았겠다.) "많은 고민을 했다. 연기할 때 이렇제 저렇게 해야지 계산을 하면 봉준호 감독님이 딱 안다. 본능적인 연기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계속 다시 찍었다. 그냥 한번 도준이가 되어보자는 느낌, 내 안에서 외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놔뒀다. 잠이 덜 깬 상태의 몽롱함? 그런 게 도준 같다고 생각했다."
(맨처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땐 어땠나.) "봉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봉 감독과 같이 작업한 소감은.)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봉 감독님 작품 보면서 구성이 좋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더'도 그렇지만 전율이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굳이 드러내야 하는 걸 감추고, 익히 아는 건 감춘다. 그래서 더 깊이가 있고 볼수록 새롭다. 감독님은 천재같다."
| 원빈은 강원도 정선 출신이다. 봉 감독은 원빈이 갖고 있는 산골 소년의 정서를 정확히 포착했다. 현실 속 원빈은 어떤 아들일까. |
(봉감독이 '원빈은 어린 시절 뱀을 잡아다 팔았다'고 말했다.) "시골에선 일상적인 풍경이다. 어른들이 뱀 잡아다 파는 걸 보고 꼬맹이들도 따라한다. 오락도 하고 싶고 맛난 것도 먹고 싶었다. 근데 집에서 돈은 안 주고. 그래서 뱀이 있으면 잡아다 팔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오남매를 키우느라 힘드셨다. 새벽에 나가 밤 늦게 들어오시고. 본인의 삶 자체를 잊고 사셨다. 다른 친구들 부모님처럼 여행 다니고 문화 생활 즐기고 좋은 거 잡수시고 그랬다면 이런 생각은 안 들텐데."
(이번 영화 찍은 걸 부모님께 왜 말씀 안드렸나.) "내 일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얘기 안 한다. 가족에겐 더더욱 알리고 싶지 않다. 걱정만 끼치는 것 같다. 시골 내려가면 일 얘기 안 한다. 그냥 요즘 시골 동향 파악? ㅋㅋ. '올해는 뭐 심었어요? 뭐 재배했어요?' '개는 잘 커요? 강아지 키우기 힘들죠?' 이런 얘기 한다."
(이번 영화 어머니 손 꼭 붙잡고 가서 볼 건가.) "보여드리기가 좀.... 내 모습이 사고 치고 다니는 친구라. 부모를 극한까지 몰아가는 아들이라 보여드리기 미안할 것 같다."
(어릴 때 사고쳐서 부모님 걱정 끼쳐드린 적 없나.) "집에 불 낼 뻔 했다. 여섯 살 때인가. 불이 번지려던 찰나에 부모님이 껐다."
| 원빈은 1996년 한 케이블 TV의 공채 3기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데뷔작은 98년 김민종 이승연 주연의 영화 '토요일 오후 2시'. 99년 드라마 '프로포즈'(KBS)로 얼굴을 알렸고 2000년 '가을동화'(KBS)에서 "얼마면 되냐"는 명대사로 원조 한류스타가 됐다. 이후 본격적인 영화 출연작인 '킬러들의 수다'(2001)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 '우리형'(2004)을 거쳐 '마더'(2009)에 이르기까지 형이나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착한 동생이나 아들 역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
(왜 자꾸 이런 역으로만 나오는 건가.) "고른 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간다.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소중함에 끌린다. 가족 간의 사랑, 혹은 남녀간의 사랑처럼 어떤 형태든 사랑이 있는 영화라면 마음이 간다."
(배우로서의 욕심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이십대의 연기가 있다면 삼십대, 사십대의 모습이 있다. 인생처럼 연기도 흘러가는 것 같다. 연기에 세월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연기에 대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게 배우인 것 같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운 영역이다."
(만약 CF를 벌어다 줄 수 있는 영화와 연기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의 캐스팅 제의가 동시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나.) "당연히 후자를 택하겠다."
원빈은 원조 꽃남이다. 그의 공백기에 이민호를 비롯한 신예 꽃남들이 원빈의 왕좌를 탐했다. 원빈은 "나 스스로 꽃남이라고 느껴본 적 없다. 팬들이 그렇게 봐주는 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지만. 꽃남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본 적도 없고 기분 좋아서 들떠 본적도 없다"고 말했다. 영화 '마더'는 그의 말처럼 "연기 인생의 또다른 출발점"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