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냄새 진동하는 도시 수프로 끓이면 무슨 맛일까?

"한국의 환경영화제에서 제 작품을 초청해주셔서 놀랐는데, 대상까지 받아서 정말 놀랐어요."

27일 폐막한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대상을 받은 아킬레 나즐리 카야(Kaya·여·29) 감독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터키 출신의 그녀는 체코의 소도시 즐린(Zlin)을 소재로 만든 8분40초짜리 애니메이션 '즐린 수프(Zlin Soup)'로 상을 받았다. 이날 낮 광화문에서 만난 그녀는 "내 영화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다음 영화를 잘 만들라는 격려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터키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카야 감독은 체코로 건너가 '즐린 필름스쿨'에서 2년간 애니메이션을 배웠고, 현재 프라하의 '프라하 필름 아카데미' 석사과정 중이다. '즐린 수프'는 2007년 즐린에서 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든 영화. 유럽의 유명 신발브랜드 '바타(Bata)'가 19세기 말 탄생한 즐린은 1939년 바타 본사가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쇠락을 거듭해 온 도시다.

"저는 여행 갈 때도 전혀 모르는 도시로 무작정 가는 타입이에요. 즐린에 유명한 애니메이션 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냥 체코로 떠났죠. 그땐 체코어로 '안녕하세요'도 몰랐어요."

즐린에는 20세기 초 지어진 공장들이 텅 빈 채 방치돼 있고, 골목마다 쓰레기와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신발 박물관에 가끔 몰려오는 일본인 관광객 말고는 외부 손님도 거의 없다. 젊은이들은 쇼핑센터와 카지노 바로 몰려다니고 노인들은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상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하이 즐린, 바이 즐린'(Hi Zlin, Bye Zlin)이란 농담도 있어요. 오자마자 떠나고 싶은 도시라는 거죠."

카야 감독의 영화는 폐허가 된 공장과 노숙자들이 뒤엉킨 즐린의 상징들을 한 솥에 넣고 끓인 '즐린 수프' 조리법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했다. 즐린 시내에 있는 바타 창업자 토마스 바타의 동상, 즐린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자두 브랜디도 모두 수프의 재료다. 마지막에 넣는 허브의 유통기한은 1948년 2월 25일. 체코가 공산화되던 날이다. 완성된 수프를 맛본 어떤 이는 구역질을 하고 또 다른 이는 맛있게 먹는데, 결국 영화는 "이 수프엔 '문화'가 없잖아!"라는 말로 맺는다.

"수프는 체코인들이 거의 매 끼니 먹는 음식이에요. 즐린이란 도시의 특징적인 모든 요소를 내 영화에 넣고 싶었는데, 모두 한데 넣고 수프로 끓이는 식으로 묘사한 거죠."

그녀는 다음 영화로 터키 북서쪽 마르마라(Marmara)해(海)에 대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제가 이 바다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진 마지막 세대예요. 지금 마르마라해는 완전히 오염돼서 해파리밖에 살지 않죠." 터키에 '한국전 참전'을 자랑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한국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는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고 부산으로 떠났다. "한국의 바다를 꼭 보고 싶다"고 했다. 배낭을 메고 서울역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씩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