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鐵)이 살아있다

철(鐵)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한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하나는 조각가 엄태정의 초대전 《쇠, 그 부름과 일》(성곡미술관)이며, 다른 하나는 설치미술가 지니 서의 《end of the Rainbow》전(몽인아트센터)이다.

엄태정은 1967년 국전에서 〈절규〉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이래 40여년간 철을 다루는 작업을 이어왔다. 오랜 세월 철을 다뤄 온 작가는 "쇠는 어느 부분을 자극하면 반응하고 울린다. 살아 있는 근육 같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돌과 나무로도 작품을 해봤지만 이내 철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모든 문제를 드러내다 보니 기하학적 추상이 됐다"고 말했다. 파도타기를 하기 위해선 파도 위에서 놀아야 하듯 작가는 철의 물성을 타고 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 작품뿐 아니라 그동안 작가가 틈틈이 그려왔던 드로잉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엄태정이 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신비로움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면 지니 서의 설치 작품에는 생물학적인 상상력이 배어 있다. 지니 서(Jinnie Seo·한국명 서현진)는 미국 뉴욕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현미경을 통해 보이는 공간의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한 장의 얄팍한 슬라이드 속에 세포의 끝없는 공간이 펼쳐지고, 그 속에 추상화 같은 세계가 숨겨져 있었다.

전시장 1층은 쇠창살처럼 보이는 철 구조물을 대각선으로 교차시키면서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평면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관람객을 끌어들여 3차원의 공간을 확인시켜준다. 2층에 설치된 작업은 대형 목재를 묶는 철끈으로 만든 작품으로 철이 자연광을 반사하면서 내는 색이 오묘하다. 전시장 전체를 휘감아 도는 철끈이 리듬과 생명력을 가진 듯하다. 지니 서는 전시 제목(《end of the Rainbow》)에 대해 "무지개의 끝에 가볼 수 없는 것처럼 작품의 종착지는 없고 계속 탐구하는 과정만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쇠, 그 부름과 일》은 28일까지(02-737-7650), 《end of the Rainbow》는 7월 19일까지 열린다(02-736-1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