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희망이라는 이름의 건더기

그는 허우적댄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무능력을 실감하는 면접 자리에서 허우적대고, 한심한 애인과 이제 그만 만나고 싶다고 선언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허우적댄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차디찬 사회의 도랑 한가운데서 살려달라는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울릴 뿐이다. 연이자가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대부업체의 손길만이 처절하게 친절하다.

그는 뛰어내린다. 그를 속박하는 무능력의 굴레로부터,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갈 곳 없는 소외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한강행'을 결심하고 미련 없이 몸을 던진다. 생뚱맞게도 그는 63빌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무인도에서 눈을 뜬다. 텁수룩한 수염에 야생인 느낌 물씬 나는 정재영의 포스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영화 '김씨표류기'의 시작이다.

우리나라, 그것도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무인도에서 이뤄지는 김씨의 표류기는 그 옛날 로빈슨 크루소나 가깝게는 척 놀랜드(캐스트 어웨이)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거친 야생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야만 하는 생존에 대한 사명감이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부싯돌로 불을 일으킬 수 없으면 라이터로 켜면 되고, 자신이 입던 양복과 통조림통 등을 활용해 허수아비를 만들기도 한다. 그 언밸런스한 상황이 관객에겐 참을 수 없을 만큼 우습다. 웃음보가 터진다.

대교를 쌩쌩 달리는 차와 수없이 반짝이는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서 김씨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대책 없이 시작했던 표류생활은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고, 그런 그를 망원경으로 조용히 관찰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여자 김씨 정려원이다.

경제적 무능과 사회적 소외. 한없이 우울하게만 보이는 두 대표 루저는 기이한 방법으로 소통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자장면을 완성하고 남자 김씨가 흘리는 닭똥 같은 눈물은 여전히 코믹하지만, 마냥 우습게 느껴지진 않는다. 희망이라는 추상적 메시지가 자장면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뭉클하게 와 닿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에 이어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을 부담스럽지 않은 시선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이해준 감독의 솜씨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는 우울한 얘기를 우울하지 않게,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소재를 식상하지 않게 풀어내는 재주를 지녔다. 무거운 메시지로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젊은 감독과 아낌없이 망가지는 두 '멀쩡한' 배우의 조화가 궁금하다면 '김씨표류기'를 놓치지 말기를.

< 이은빈 인터넷 객원기자 scblog.chosun.com/cuci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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