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화화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 사랑하는 딸이 고등학생 복서에게 폭행당한다. 마흔일곱의 아빠는 속수무책. 구겨진 자존심은 처진 뱃살만큼이나 볼품없다. 아빠는 결심한다, 전사가 되기로. 회사를 휴직하고 싸움꾼에게 실전 필살기를 배운다. 평범한 중년 남자가 가장의 체면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김윤석 주연의 새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빼닮았다.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시골 형사 조필성 역을 맡았다. 분노의 레이저 안광을 발사하던 '추격자' 엄중호의 눈빛이 아니다. 좀 멍하고, 총기 없고, 술이 덜 깬 동네 아저씨다. 희대의 탈주범 송기태(정경호)에게 백 대 얻어터지면서도 기어이 한 대를 들이받기 위해 그는 쫓고 또 쫓는다.
정경호와 격투신 소똥밭 뒹굴었다
'범인 풀어주면 어떨까'마지막신 연민 일으키고 싶었다
(큰 딸이 초등학교 입학했겠다.) "이제 1학년이다. 실감이 안 난다. 집에 와보면 받아쓰기 연습하고 있는데. 아… 참 안됐다, 애기가 받아쓰기를 하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다. 앞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공부라는 걸 해야 하는데." (학원은 많이 안 보내나.) "노는 거 위주다. 퍼즐 맞추기 놀이 같은 거. 친구랑 같이 그냥 논다. 남들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나." (영화의 결말이 뭉클했다, 조마조마함도 있고.) "마지막에 둘이 싸울 때 연민을 불러 일으키고 싶었다. '아휴, 쟤도 다 비하인드가 있는데, 그냥 좀 풀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탈주를 해서 그냥 뭐 하나 훔친 게 전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직업인 다방 레지와 둘이 행복하게 살려고 떠나려는 건데, 그냥 놔두면 어떨까. 근데 또 그렇지가 않잖아. 난 (경찰에) 복귀해야 하고 딸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고 아버지로서의 위신을 다 잃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관객이 갈등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제복 입고 들어오는 장면은 그냥 소박하게 끝냈다."
(의외로 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하고 어려운 길을 택한다.) "송기태한테 손가락 잘리고, 서울 특수수사대한테 야단 맞고, 자기 돈 1800만원이 본부로 올라가는 걸 내 돈이라고 말도 못한다. 강력반에서 형사들이 밥 먹고 있는데 '얘들이 어제 내 전화만 받았어도 나는 마을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건데'하는 생각이 든 거다. 밥먹던 동료 형사가 '미안혀 전화 못 받아서'라고 말할 때 '예라이' 하면서 찌개 냄비를 확 부으려다 자기 머리에 붓는다. 여기서 필성이 캐릭터의 정점을 봤다. 여린 사람이구나.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고 잘난 사람도 아니고 여린 사람. 좀 나쁜 짓은 해도 그렇게 나쁜 짓은 못하는 사람 말이다."
('추격자' 격투신 찍을 땐 하정우와 '한 몸 같았다'고 했다. 이번에 정경호와는 어땠나.) "경호의 액션은 멋져야 하고 나는 그럼 안 된다. 둔한 액션을 보여줘야 했다. 날렵하게 움직이면 NG나서 다시 찍었다. 근데 그걸 소싸움 경기장에서 찍었는데 소싸움 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대회는 낮에 하고 우리는 밤에 찍었다. 옆에선 다음날 경기에 출전할 소들이 자고 있었다. 소 주인들한테 야단 많이 맞았다. 싹싹 빌면서 억지로 찍었다. 근데 우리가 싸우고 뒹군 그 축축한 모래 바닥이 전부 소똥이었다."
(배우와 감독으로 활동한 고 박노식씨는 '배우란 분 냄새가 나야 배우'라고 생전에 말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는 뭔가.) "이준익 감독은 배우의 배(俳)자가 '아닐 비(非)'에 '사람 인(人)' 자라 했다.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배우는 자기 길을 가는 사람,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슬럼프가 오고, 회의가 오고 자기 재능을 의심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야 한다." (스타는 많지만 진짜 배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꽃남 스타든 아니든 모든 배우는 잘 생겼다는 말보다 '연기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그러면 당연히 자기가 원하는 걸 노력해서 획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