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줄행랑

〈제3보〉(31~45)=원성진은 85년생 동갑인 박영훈·최철한과 함께 이른바 '송아지 3총사' 멤버. 셋 모두 올해 만 24세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황소 3총사'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얘기가 실감 난다. 원성진은 어린 시절부터 나이가 무색할 만큼 능청스러운 노림수와 끈적끈적한 기풍을 선보여 바둑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한동안 '송아지' 셋 중 선두주자는 단연 원성진이었다.

백 △의 침투에 31은 최강의 공격 수단. 흑세가 강한 곳이어서 백은 가벼운 행마가 긴요하다. 32, 34로 맞끊는 상용수법을 거쳐 40까지 틀을 갖춰간다. 하지만 41을 맞자 백은 자체론 두 눈이 없는 모습. 일단 적진 파괴엔 성공했으니 무사히 달아나기만 하면 된다. 44까지 '병법 36계'에 나오는 맨 마지막 전략, 즉 줄행랑의 전형이다.

도망가면서 44는 무모하지 않을까. 그러나 원성진은 "끊을 테면 끊어오라"며 유혹한다. 참고도 6까지를 보고 있는 것. 다음 A와 B가 맞보기다. 야마시타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45로 선회했다. 말할 것도 없이 다음 '가'의 치중을 노리는 급소. 여기서부터 야마시타의 공격, 원성진의 타개 등 자기 전공과목을 앞세운 공방이 이 바둑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3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