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이세돌, 내년까지 돌 거둔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자신에 대한 기사회의 징계 결정에 충격받아 기사직 휴직을 선언했던 이세돌(26) 九단이 8일 오후 친형이자 대리인 격인 이상훈(34) 七단을 통해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정식 접수했다. 이세돌의 휴직시점은 이달 30일, 복귀시점은 2011년 1월 1일로 휴직기간은 총 1년 반이다.

이세돌은 9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질 제21회 TV아시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즉각 휴직에 돌입할 계획이다. 8일 서울 메이필드호텔서 열린 이 대회 전야제에 나타난 이세돌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대회가 될지도 모르는 만큼 최선을 다해 좋은 바둑을 두겠다"고 밝히고 총총히 사라졌다.

지난 6일 서울서 치른 후지쓰배 8강전이 이세돌의 휴직을 재촉한 셈이 됐다. 이세돌은 "8강전서 승리할 경우 준결승 및 결승(7월 4~6일)이 끝난 후 휴직하겠다"고 밝혀 왔기 때문. 바둑계는 한달 가량의 시간 동안 분위기 반전을 기대했으나 이 패배가 즉각 휴직 결행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이 끝나버렸다.

창하오(常昊)와의 8강전서 패한 날 이세돌은 밤새 통음하며 엄청나게 괴로워했다고 한다. "마지막 세계 대회가 될 수도 있어 꼭 이기고 싶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마음대로 안 되고 실수가 속출하더라"며 울먹이더란 게 새벽까지 함께 했던 친형 이상훈의 전언이다. 휴직계를 서둘러 제출해달라는 독촉도 그때부터 부쩍 심해졌다고 했다.

이세돌의 어린 시절부터 매니저 역할을 해온 이 七단은 "기사에게 휴직은 형벌이다. 웬만하면 대국은 계속하자고 설득해왔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세돌이는 전혀 자기 바둑을 둘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황폐해 있다. 도저히 더 이상 (휴직을) 말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기원측도 허탈한 표정이다. 지난 1주일 동안 시도했던 여러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 한상열 사무총장은 "내달 2일 이사회 소집 때까지 휴직을 보류했더라면 좀 더 모양 좋게 매듭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기원 실무자와 이상훈 七단 간의 지난주 면담이 오히려 역효과를 빚는 등 양측 감정의 골은 좀체 메워지지 않는 분위기다.

이세돌이 현재 보유 중인 타이틀은 국수 및 명인, 삼성화재배와 TV아시아선수권 등 4개. 국제대회 전력 약화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무대의 혼란 역시 불가피하다. 특히 도전제 방식인 국수전이 위기를 맞았다. 이달 하순으로 잡혀 있는 물가정보배 8강 토너먼트, GS칼텍스배 등 나머지 기전은 기권 처리될 전망. 리그의 경우 이미 이세돌에게 패점을 안은 기사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휴직 이후 이세돌은 형 이상훈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원생들을 가르치고, 중국리그 대국에 전력을 쏟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꼭 한 번은 구이저우(貴州)팀을 우승시키고 싶다"고 평소 말해 왔다. 오는 13일과 27일에도 현지 대국이 잡혀 있다. 그러나 중국리그 부분도 현재 기원과 이세돌측의 법적 해석이 달라 또 다른 충돌요인으로 잠복해 있다.

한달 이상 바둑계를 뜨겁게 달궈 온 '이세돌 파동'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 과정에서 바둑인과 팬 구분 없이 의견이 분열되고, 기원 집행부와 프로기사들 또는 프로기사 자신들끼리의 불신이 자리잡는 등 바둑계 전체가 큰 상처를 입었다. 팬들의 바둑계에 대한 기대도 함께 추락했다. 한국기원이 분열을 치유하고 실추된 인기를 회복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