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자학(自虐)의 행군

〈제5보〉(61~82)=원성진은 당대 세계 최고수로 떠오른 중국 구리(古力)를 보란 듯 혼내준 경력이 있다. 1년 전 제주도에서 열렸던 양국 천원타이틀 보유자 간 맞대결서 연속 KO펀치를 휘두르며 2대0으로 완봉승한 것. 구리는 그 이전까지 5회째 중국 천원으로 출전하면서 최철한 송태곤 조한승 등 한국 대표들을 울렸었다. 원성진이 '원 펀치'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64까지는 누구나 예상했던 수순. 그런 뒤 65부터 71까지 진행되고 보니 우변과 하 중앙 백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렸다. 앞서 둔 무리수(△)의 죄과. 72를 외면하고 77까지 처리하며 79와 '가'를 맞본 솜씨도 눈부셨다. 백은 고심 끝에 78로 아래쪽을 먼저 수습했지만 79가 놓이니 이제는 중앙 백 4점과 우변 백이 동시에 시달릴 판이다.

81은 공수 양면의 요점이긴 한데 참고1도로 타협했어도 충분했다. 82는 혼신의 승부수. 참고2도 5까지면 우변은 살지만 중앙이 떨어져 '무난히' 진다. 상대 공격을 유도해 반전의 기회를 노릴 목적으로 편한 삶을 마다하고 자학(自虐)적 행군 길에 나선 것. 흑도 정확한 주먹 아니면 역습당하기 십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