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백, 난국(難局)

〈제8보〉(117~132)=동시 진행된 16판의 1회전 대국 가운데 벌써 다섯 판이나 끝났는데도 이 바둑은 아직 '초저녁'이다. 둘이 경쟁하듯 하염없이 장고 대결을 펼쳐온 때문이다. 장고는 대개 ①원래 손이 빨리 안 나가는 타입일 때 ②죽어도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임할 때 ③수가 유난히 안 보일 때 등의 경우에 발생한다. 이 바둑은 두 대국자 모두 ①번과 ②번이 겹친 케이스로 분석된다.

117로 중앙 백을 추격하며 흑은 계속 기분을 내고 있다. 이 수로 126 자리로 내려 빠져 우상귀 쪽 백을 사로잡는 수는 없을까. 하지만 백도 참고도 2 이하의 반격수단을 준비해놓고 있다. 4의 붙임이 맥점. 12에 이르면 중앙 흑도 끊겨 수상전이 되는데, 흑이 오히려 잡힌다. 117은 추격과 동시에 흑 대마 스스로의 봉쇄를 피하는 뜻도 담고 있는 셈.

118로 보강했지만 이제 우상귀 백은 패(覇)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25로 바깥이 봉쇄되자 마침내 126, 128로 패가 났다. 패도 그냥 패가 아니라 백이 2번을 두어야 하는 늘어진 패다. 바꿔 말하면 흑은 다른 곳에 3번을 둘 권리를 확보했다는 얘기. 백의 심각한 난국(難局)이다. 흑은 여기서 당장 따내지 않고 129로 동정을 살폈고, 그 순간 먼저 초읽기에 돌입했다.